오피니언 취재일기

그렇게밖에 못 쫓아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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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낙도(落島)다. 평일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미술관에 가려면 절대 오후 5시를 넘기면 안 된다. 허허벌판인 대공원 전철역에서 미술관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끊겨 버리기 때문이다. 물리적 접근성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미술계에서도 미술관의 존재감은 낙도에 가깝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미술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이었다. 전시 공간이나 아트페어장마다 “그림 한 점 사 보자”는 관객이 몰렸다. 김윤수(72)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재임 기간은 이 좋은 시절과 맞물린다. 민중미술계의 대부인 그는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관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그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미술계는 호황인데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람객은 58만 명(2005년)에서 43만 명(2007년)으로 급감했다. 한마디로 대중이 외면한 것이다.

기획전도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올 초 명품 보석 업체와 손잡고 기획한 행사는 “특정 보석 업체의 홍보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 관장의 해명은 “우리도 수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설치미술가 아네트 메사제의 회고전에 대해서도 “퐁피두센터의 기획에 장소만 빌려 준 이삿짐센터식 전시”(미술평론가 최열)라는 빈축을 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을 미술과 가깝게 하는 전시의 표본을 제시해야 했다. 작가를 발굴하고 검증하는 제도권의 대표 주자여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쯤 되면 김 관장은 민망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

문화관광체육부는 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김 관장을 해임했다. 문제는 해임 사유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비싸게 샀고, 수입 시 관세청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실무자가 책임질 문제다. 게다가 문화부는 지난해 12월 이미 이 사안으로 미술관에 경고 처분을 내렸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코드 인사’는 물러가라는 사인을 여러 번 보내왔다. 그런데도 안 물러나니 극약처방을 한 것이다. 하지만 무리다. 명분이 부실하니 당장에 김 관장이 반발하고 있다.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며 전투 태세다. 노무현 정권 때의 코드 인사에 책임 있는 민주당도 “표적 감사”라며 김 관장 구하기에 나섰다. 그동안 국립미술관을 잘못 운영했던 책임은 사라지고 정치 공방으로 변질된 것이다.

문화부의 어설픈 일 처리가 부실 경영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래서 “문화부가 서두르는 게 진짜로 미술계를 생각해서냐, 아니면 또 다른 코드 인물을 임명할 자리가 필요한 거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그런 정치 싸움의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미술계와 국민이 받고 있다.

권근영 문화·스포츠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