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9·11과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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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지든 오바마가 인류에 준 역사적 충격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오바마 이전과 이후로 이미 나누어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나라”라고 썼다. ‘이전과 이후’는 그리스도 탄생 이전(BC)과 이후(AD)가 있다. 세계사에는 제2차 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일이 많았지만 매번 ‘이전과 이후’를 붙이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의 귀에 가장 익숙한 ‘이전과 이후’는 2001년 9·11 테러였다. 9·11과 오바마라는 두 사건이 모두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두 가지 ‘이전과 이후’는 무엇이 다른가.

 2001년 9월부터 수년간 미국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공포에 떨었다. 얼마나 증오했으면 비행기를 거대한 빌딩으로 몰아갔는가, 어떻게 사람이 화염을 피해 80~90층에서 낙엽처럼 떨어져야 했는가, 수천 명의 뼛조각은 어디로 갔는가. 미국은 울었다. 부시도 울고 백인도 울고 흑인도 울었다. 시카고의 오바마도 울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모두가 울었다.

그때 나는 워싱턴특파원으로 내셔널 프레스 빌딩에 출근하고 있었다. 그해 10월, 이번에는 탄저균 테러가 덮쳤다. 미 의회 건물과 주요 언론사에 탄저균이 묻은 우편물이 배달된 것이다. 상원의원과 유명 앵커도 우편물을 받았다. 탄저균에 노출돼 5명이 숨졌고 17명이 병을 앓았다. 탄저균 공포가 있었지만 나는 사무실에 배달되는 우편물을 뜯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봉투를 열어보고는 화장실에 가 열심히 손을 씻었다. 방독면을 사려고 이곳저곳 수소문했지만 품절이었다. 7년간의 수사 끝에 미 연방수사국(FBI)은 용의자를 한 명 찾아내 수사망을 좁혔다. 놀랍게도 그는 전문적인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미 육군 생물학전 연구소에 근무하는 62세의 박사였다. FBI가 기소할 것이라고 통지하자 지난 7월 그는 자살했다.

특파원 임기를 마쳐 가던 2002년 겨울 이번에는 미국 수도 워싱턴과 인근 지역에서 저격 사건이 터졌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총탄에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수퍼마켓 주차장에서, 자기 집 정원에서, 주유소에서 픽픽 쓰러져 갔다. 3주 만에 10명이나 죽었다.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웠다. 수개월 후 흑인 남자와 의붓아들 2인조가 범인으로 붙잡혔다. 이들은 밴 차량의 짐칸에 엎드려 구멍을 통해 총을 쏴댔다. 외국으로부터 날아온 게 아니라 미국 땅에서 일어난 지독한 증오였다.

 9·11로부터 7년여가 흐른 2008년 가을. 이번에도 미국인은 울었다. 흑인들이 제일 많이 울었다.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되어보려 했던 제시 잭슨 목사도 울었고 토크쇼 진행자인 흑인의 영웅 오프라 윈프리도 울었다. 공화당원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아내와 함께 울었다. 백인들도 울었다. 하지만 이번의 눈물은 공포나 불신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독일의 도이체 벨레 방송은 “베를린 장벽 붕괴에 필적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은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이 깬 것이다. 오바마 당선은 차원이 다르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인종과 피부색이라는 벽을, 인간이 깬 것이다. 사람들은 미국을, 세상을, 인간을 신뢰하게 되었다. 21세기는 9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9·11과 오바마라는 상반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인류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다는 20세기보다 21세기가 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