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32>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호 16면

미국 닉슨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 백악관에 볼링장을 만들었다. 아이젠하워는 퍼팅 그린을 만들어 놓고 골프를 즐겼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어떨까. 최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질문에 오바마는 백악관에 들어가면 농구 코트를 만들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골프보다 농구를 좋아하지만 오바마의 핸디캡은 17로 알려져 있다.

백악관에 가려면 골프를 즐겨라?

지난 5일 그가 미국의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대통령과 골프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대통령과 골프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겠지만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공교롭게도 골프를 하지 않았던 앨 고어와 밥 돌, 마이클 듀카키스, 월터 먼데일 등은 각각 패배의 쓴잔을 들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골프를 치지 않는데도 승리한 경우는 지미 카터 정도다. 최근 100년간 미국 대통령을 지낸 17명의 취미를 조사해 봤더니 골프를 치는 이가 14명이나 됐다는 분석도 있다. 퓰리처상을 세 차례 수상한 뉴욕 타임스 기자 돈 반 나나 주니어가 2003년 밝힌 내용이다(『백악관에서 그린까지』, 원제 『First off the tee』). 여기에 오바마까지 더해졌으니 ‘대통령이 되려면 골프를 하라’는 말이 허황하게 들리는 것만은 아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골프를 가장 좋아한 사람을 꼽으라면 빌 클린턴을 빼놓을 수 없다. 골프 매니어답게 그는 재임 시절 골프와 관련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가 밝힌 베스트 스코어는 78타.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코어를 곧이곧대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멀리건을 남발해 ‘빌리건’이란 달갑잖은 별명도 얻었다. 2002년엔 골프대회 프로암을 마치고 난 뒤 “그레이스 박(박지은) 좀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가 구설에 올랐다.

제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소문난 골프광이었다. 샤프한 이미지처럼 스윙도 깔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베스트 플레이어로 꼽힌다. 그러나 그가 남의 눈을 피해 ‘몰래 골프’를 즐겼다는 건 의외다. 1961년 43세의 새파란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했던 그는 부자들의 운동으로 불리는 골프를 즐긴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쉬쉬하며 골프를 즐기는 요즘 우리나라 공직자와 비슷하다고 할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는 백악관에 연습 그린을 만들고 집무실에서 골프화를 신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회원이었던 그는 17번 홀 옆에 서 있는 나무에 여러 차례 공이 맞고 떨어지자 나무를 베어 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 나무엔 ‘아이젠하워 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오거스타 골프장을 지키고 있는 건 물론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인 41대 부시(84) 전 대통령도 알아주는 골프 매니어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는 각각 미국의 몇 대 대통령인지를 표시하는 ‘41’과 ‘43’이란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쓰고 동반 라운드를 하기도 한다. 아버지 부시는 지난해 3월 34도를 웃도는 날씨 속에 골프를 즐기다 탈수 증세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성격인 급한 편인 부시 대통령은 18홀을 2시간30분 만에 도는 ‘초특급 스피드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의 핸디캡은 1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