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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주식시장 투입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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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획예산처는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하는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입법예고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채권수익률이 낮아져 주식을 포함한 다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동안 정부는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마다 국민연금의 주식매입 확대를 종용해 왔다. 심지어 노동자의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전환해 주식시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에는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을 통해 약 400조원에 달하는 부동산 투기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유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정부의 속내는 약 19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연기금을 동원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연기금이란 국민연금과 같이 국민의 노후생활보장을 위한 연금과 특정 공공사업을 위해 마련된 기금으로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경우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순전히 국민의 보험료에 의해 조성된 기금이므로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주식시장은 안전한가.

최근 차이나 쇼크와 미국 금리 인상, 고유가 행진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국제경제의 변동으로 주식시장은 엄청난 폭락을 경험했다. 외국인의 무차별적인 주식매도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만일 국민연금이 제한 없이 주식투자에 투입됐다면 국민이 낸 보험료가 하루아침에 고스란히 사라지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 규모는 약 390조원이다. 이 중 외국인 투자 규모는 170조원으로 43.5%에 달해 우리 주식시장은 외국인에 의해 좌우되는 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이 이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팔려고 해도 사줄 기관이나 개인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은 연기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연기금이 주식매수에 사용될 경우 외국인은 보유물량을 연기금에 떠넘기고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 차이나 쇼크 및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증대로 한국.대만 등 신흥시장에서의 투자위험이 높아지자 펀드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연기금의 주식매수는 외국자본에 최대 호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연기금은 외국인의 이익 실현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2008년 국민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한다. 연금 지급이 시작되면 여유자금으로 산 주식을 다시 팔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주식을 매수할 다른 기관이 국내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환금성이 문제가 돼 연금 지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연금 지급이 어려워지면 정부는 또다시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액을 낮추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노후생활은 불안정해지고 반대로 현 세대는 높은 보험료 부담 때문에 저축이 줄어들어 결국 국민경제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연기금을 동원, 인위적으로 주식가격을 높인다고 해서 자본시장이 발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외국인투자자나 재벌의 대주주에게 이익을 줄 뿐이다. 경제정책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금융시장이 어렵다고 해서 연기금의 공공성과 안정성을 훼손하는 단기적이고 편협적 처방은 국민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