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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업 실상을 아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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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주 내내 주식시장은 하루에도 수십포인트씩 등락을 거듭하며 추락했다. 주식시장은 경제의 선행지표다. 시장 참가자들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는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낙관론이 주종을 이뤘다. 성장률 전망치도 상향 수정됐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의 긴축정책 발표,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원유가 급등 때문이다. 경제위기라는 소리도 나온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대량 실업과 생활수준의 추락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겁을 먹을 만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 복귀와 함께 발표한 담화에서 "경제에 대한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16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비축해 놓고 있다. 외국 자본의 대규모 유출 가능성에 대비해서다. 경상수지도 올 1분기 60억달러 흑자를 기록, 연간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그러므로 전 세계가 공황에 빠져들지 않는 한 97년과 같은 외환 부족으로 인한 경제난에 봉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에게 지나친 위기감을 주는 게 경제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국제경제 환경과 내부 여건 악화로 장기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은 커졌다. 고유가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고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악화시키며 국민소득을 감소시켜 소비침체를 심화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긴축정책은 수출에 큰 타격을 준다. 노사 문제와 반기업 정서 등 내부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이렇듯 여건이 악화하고 장기화되는 것 자체가 위기상황이다. 이번 위기는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지난번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가능하려면 삼성전자와 같은 일류 기업이 적어도 다섯개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삼성전자도 진정한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일본 기업들이 가진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등 더 노력해야 한다. 삼성전자 같은 일류 기업도 현실에 안주하다가는 후퇴하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하물며 일류도 아닌 한국 경제가 마치 일류가 된 양 착각하고, 발전보다는 갈등과 적대감으로 세월을 보내다간 정말 심각한 침체의 늪으로 추락할 수 있다.

물론 盧대통령의 말처럼 일부에서는'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위기를 과장하려는지 모른다. 그러나 위기의 가능성이 커진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기업들이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을 기업경영의 불투명성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경제가 구조적인 위기에 처한 현 시점에서 어느 쪽이 시급한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대통령이 이런 논쟁에 말려들어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말은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로 오해받을 수 있어 경제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 없이는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도 불가능하고 사회 경제적 갈등 해소도 불가능하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에 의해 이뤄진다. 정부의 경제 살리기는 기업 현실을 파악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盧대통령은 이번 주 20대 그룹 총수와 만난다고 한다.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盧대통령은 두달간 재충전 시간을 가졌다. 확실한 경제철학을 바탕으로 재무장된 경제 식견과 혜안으로 노사를 모두 아우르며 험난한 바다를 헤쳐나가는 한국 경제의 선장 역할을 기대한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