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미국의 길, 한국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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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주목의 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카트리나 재해와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연방정부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공화당 내에서도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물론이고 군부도 ‘군대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등을 돌렸으며 합리적인 참모의 일부는 기어이 오바마의 배로 갈아탔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오바마의 미국을 만든 일등 공신은 임기 말 23%의 지지율에 머물던 부시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도전받지 않았던 미국은 오만했고 ‘우리는 누구인가’ 대신 ‘너는 누구냐’를 묻고 세계를 미국의 방식으로 훈육하려 했다. 포용과 절제, 그리고 지구 공동체에 대한 따뜻함이 들어설 자리에 일방주의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한동안 미국은 자랑스러운 국가가 아니었고 제국의 소프트파워와 품위도 스스로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보다 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10월 붕괴’는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미국의 길을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를 택한 미국인의 용기와 저력이 놀랍고, 미국 행정부는 여전히 국제질서의 프레임을 짤 수 있는 강한 국가다. 그러나 오바마는 단순히 부시의 실패와 미국의 재건을 넘어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올브라이트의 충고대로 ‘더 넓은 렌즈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유럽 국가들이 자기의 일처럼 오바마를 반겼고, 새로운 도전 국가인 중국의 75% 여론이 오바마를 열망했던 것도 ‘미국적 가치의 수출’이 아니라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이후 국제질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다. 강대국 사이의 새로운 전략적 충돌도 예견되고 있다. 그 파고는 이내 한반도로 밀려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여기서’ 필요한 것은 오바마와 안면을 트고 ‘닮은꼴’이라고 선전하기보다 차분하게 전략과 비전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국의 가치를 공화당에서, 보수의 가치를 부시의 창을 통해 배우면서 역주행했던 과거를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문화재처럼 ‘복원’하는 방법이 그랬고, 북한을 대하는 경직된 프레임이 너무 일찍 설정되었으며, ‘시장은 선이고 규제는 악’이라는 이분법이 팽배했고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다시 혁신의 길로 나가야 한다. 오바마도 선거기간 내내 혁신(renewal)을 화두로 삼았고 후진타오도 창신(創新)을 시대정신으로 삼았다. 실용 정신은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 위에서 활을 쏘는(胡服騎射)’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는 국경을 접한 흉노가 골칫거리였다. 말을 타고 달리는 흉노의 기동력 앞에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싸우는 조나라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무령왕은 흉노의 기마 전술을 채용하고 병사들에게 흉노식의 바지를 입혔다. 당연히 보수적 참모들은 반발했지만 무령왕은 “옛것을 고집하여 오늘의 문제를 풀려 한다면 시대의 변화에 맞출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직접 오랑캐 옷을 입고 나서면서 상황이 반전되었고 마침내 변화가 왔다.

그래서 우리도 새로운 옷을 입고 몸을 날렵하게 만들어야 한다. 참모들은 일과를 마친 저녁마다 선술집과 광장으로 내려와 낯선 것, 다른 것과 소통하면서 ‘물에 자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는(無鑑於水 鑑於人)’ 겸허함을 배워야 한다. 진보 진영도 예외가 아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하고, 그동안 못다한 공부길로 미련없이 나서야 한다. 지금 각을 세운다고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정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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