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 트레비 분수 광장 제2의 탑골공원- 평일에도 노인들 100여명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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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트레비분수광장’에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몰려든다. 로마에 쏟아지는 한국인 단체관광객 얘기가 아니다.지하철 잠실역과 맞붙은 서울잠실 롯데월드·백화점 지하 트레비분수광장이 탑골공원에 이어 노인들의 제2의 쉼터로 떠오르고 있다.

로마의 ‘트레비분수’는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를 뒤로 하고 동전을 던져넣으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로 사람들을 끌어모으지만 잠실판 트레비분수의 흡인력은 다른데 있다.지하광장이라 추위나 눈·비를 막아준다는 점,편리한 교통,무엇보다 또래친구들이 아쉽지 않다는게 노인들을 기쁘게 한다.

몰아친 강풍과 함께 수은주가 뚝 떨어진 지난 3일 오후.분수를 둘러싼 턱이며 주변 벤치엔 어림잡아 1백여명의 노인들이 어깨와 어깨를,등과 등을 맞댄채 빽빽이 앉아있다.신문을 보는 사람,장기며 바둑판을 벌인 사람,주위 패스트푸드점에서 산 햄버거를 먹는 사람,그저 멀거니 전방을 주시하는 사람….누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도,백화점에 쇼핑을 나온 것도 아니다.그저 광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게 나들이의 유일한 목적이었던듯 노인들은 한두시간이 지나도록 자리를 떠날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디 달리 갈데가 있나.날이 아무리 추워도,눈·비가 와도 여긴 아무 걱정 없어요.” 근처 구의동에 산다는 윤만식(70)씨는 “나야 집이 가까워 매일 ‘출근’하기 편하지.인천·성남·안양에서 오는 친구들은 지하철을 한참 타고 와야 하니 안됐다”고 말한다. “아무도 없는 빈 집 지키고 앉아 있으면 뭐하나.여기 오면 친구들이라도 많지.” 트레비분수까지의 ‘긴 여정’은 문제도 아니라고 곁에 앉은 김봉근(68)씨가 맞받아친다.“맘에 드는 할머니가 있으면 말 한마디 건네서 금방 친해질 수 있다우.” 金씨는 노인들 사이에 소문으로 떠도는 ‘즉석미팅설’도 확인해준다.

망우리할머니라고 자신을 밝히는 이옥자(62)씨.화사한 차림새가 5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씨는 “나는 여기 가끔밖에 안와요.친구들이랑 1주일에 한번이나 올까.백화점 식품코너에서 떡도 사먹고 옷도 사고 하지.”먹거리·볼거리가 모두 다양하다는게 이씨의 트레비분수광장 예찬론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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