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가는간이역>6.여천 신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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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사람의 힘으로 만들수도 없다.혹 만들수있다면 거기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른다.
신풍역(新豊驛).전남여천군율촌면신풍리의 작은 역을 찾는 것은어쩌면 천국을 꿈꾸던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 또는.천국'을찾아가는 일이다.
윌리엄 헤밀턴 포사이트(1873~1918).천국의 씨앗을 뿌린 사람.우리나라 최초의 나병원 설립자다.미국 프린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04년 선교 의사로 한국에 와 지금의 전주예수병원에서 일했다.
1908년 4월 한 선교사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광주로 가던중 길가에 쓰러져 있는 여자 한명을 발견한다.
피와 고름으로 뒤범벅된 중증 나환자.그녀를 말에 태우고 노숙끝에 광주에 도착한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나병을 생각하던 때.다른 선교사들도,그 누구도 그녀를 돌보려하지 않았다.포사이트는 벽돌굽던 빈 가마터로 그녀를 옮기고 혼자 치료를 시작했다.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 나병원의 시작이 다.
애양원.1926년 광주 나병원이 지금의 신풍리 자리로 옮기면서 가진 이름이다.이후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나환자들을 치료했다.66년부터는 치료를 마친 환자를 위한 정착촌도 건설했다.
.문둥이들의 천국'.이청준이 소설.당신들의 천국' 에서 그려보였던 그 치열한 천국의 역사가 이곳에서 이뤄진 것이다.
신풍역은 그 신산(辛酸)했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본 증인이다.
절망과 냉대에 지친 수많은 나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신풍역에 내렸다.그리고 역 뒤편 1㎞ 남짓한 황토길을 걸어 애양원을 찾아간 것이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가는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먼 전라도길.
-한하운 시.전라도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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