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有感>서울두레 공연 '5개의 뮤직박스'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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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인디-뮤지컬'.저예산.소규모의 독립(인디펜던트)영화에서 차용한 이 용어를 앞으로 주목해야 한다.
인디-뮤지컬을 향한 집단적 움직임이 서서히 태동조짐을 보이고있는 것이다.이는 당연히 제작비가 10억원대에 육박하는 브로드웨이형 상업뮤지컬에 대한 반발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두레에서 막을 내린.5개의 뮤직박스'(한국민족음악인협회 제작)는 이른바.인디-뮤지컬'의 탄생선언문과 같은공연이었다.이런식 공연도 가능하다는 대안(對案) 뮤지컬운동가들의.시위'인 동시에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해준 신선함이 가득한무대였다.
이 작품은 만든이들의 주장에 걸맞게 저예산(2천5백만원)을 들인 소극장용 뮤지컬이었다.출연배우(5명)도 적었고 무대도 간편했지만 평이한 내용과 독창적인 안무.음악(노래)으로 관객과의교감은 어느 톱클라스의 공연 못지않았다.
뮤지컬의 무대는 신혼부부가 주로 이용하는 제주도 어느 호텔의바.해설자겸 출연자로 나오는 바텐더와 각각 초혼.재혼.삼혼.사혼인 네명의 여성이 등장한다.혈흔이 안보인다고 신혼방에서 쫓겨난.김은숙'(견명인)을 비롯,네명의 여자들은 각 각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
뮤지컬은 이들의 넋두리와 신세한탄,남성에 대한 도발이 반복되면서 결국.사랑이란 종착역까지' 숨가쁘게 달린다.주로 재야.노래극운동'을 통해 단련된 개성이 넘치는 배우들의 노래와 춤.연기가 연방 폭소탄을 동반했다.주류.제도권 연극'에 첫선을 보인연출자 김성민은 작사.작곡.연출의.삼중고'를 거뜬히 이겨내 대학로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음향시설의 낙후로 대사와 음악의 전달력이 떨어지고 메시지가 약한 점도 이들의 공들인 흔적들에 비하면 아량으로 봐줄만 했다.소극장무대인 만큼 라이브음악과 노래였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았다.그러나 기술적인 약점에도 불구 하고 무엇보다 이들의 강점은 출연자와 스태프,그리고 민음협등 지원세력이 음악에 정통하다는 것.순서가 뒤바뀐 여타 뮤지컬과 달리 음악이란.뼈대'에 대사와 연기가.살'로 붙어야 제맛이 난다는 뮤지컬의 기본에 그만큼 충실했다.
비록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 인디-뮤지컬에 우리 공연예술의 미래 한편을 걸어도 되겠다는 야무진 욕심이 생긴 것도 이때문이다.지금도 롱런가도를 쾌속항진중인 극단 학전의.지하철1호선'이 어느정도 이런 흐름의 기폭제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이들은 이번 무대를 계기로 김민기등 소극장형 뮤지컬 운동가들과 힘을 합쳐 내년중.인디-뮤지컬 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 보여준 가능성이.한국형 뮤지컬'로 활짝 꽃피우길 기대해본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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