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골프>심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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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승부를 가리는 놀이는 모두.제로섬 게임'이다..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것이다.골프에서도 함께 라운딩하는 사람이 OB를내거나 공이 숲으로 빠지면“어이쿠”“어쩌지”하면서도 스며나오는미소를 숨기기에 바쁘다.게다가 내기라도 붙으면 표정관리고 뭐고없다.상대의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일부러라도 해댄다.이른바 심리전이다.
그러나 상대를 지나치게 자극하는게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자극이 불씨가 돼 상대의 투지가 활활 타오르는 경우엔되레 내가 혼쭐나기 때문이다.
보기 플레이어 L은 지난주말 가까운 친구들과 오랜만에 라운딩을 나섰다.실력이 엇비슷해 항상 공싸움보다 말씨름이 더 치열한그룹이다.특히 K와 L은 마지막 홀에서 승패를 가르곤 하는 사이.이날도 둘은 L이 한 타를 앞선 상황에서 마 지막 홀에 섰다. 두사람 다 깨끗한 티샷으로 투온 거리에 안착.나란히 7번아이언으로 두번째 샷을 날렸다.L은 홀컵에서 5쯤 떨어진 그린에,K는 그린에 2~3 못미쳤다.
누가 봐도 승부는 뻔했다.L이 2퍼트로 파만 해도 K는 버디(-1)를 해야 겨우 비기는 상황이다.L이 이기죽거렸다.“승부는 끝났어.포기하시지.” K의 눈빛이 번득인 듯해 보인건 햇빛때문이었을까.그린까지 두어번 왕복하며 신중히 라이를 살핀 K는샌드웨지로 공을 가볍게 밀었다.볼은 그린에서 두어번 튀더니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번엔 L이 당황할 차례.승부수로 띄운 버디퍼팅은 구멍을 3나 지나쳤고 두번째 파퍼팅도 홀컵을 돌아나왔다.역전패였다.
임병태〈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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