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세명이 책 한권씩-며느리.시어머니 이어 아들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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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며느리 김민희(金民喜.47)씨가.고부일기'를 냈다.올해 시어머니 천정순(千貞順.75)씨가.붕어빵은 왜 사왔니?'로화답했다.
독서가에 화제가 됐다.고부간의 솔직한 얘기로 모두 5만여권이넘게 나가는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인세를 받지 못했다.
남편이자 아들인 한윤수(韓允洙.48)씨가 세운 출판사(형제)에서 책을 내고 인세 전액이 회사 투자비로 돌아갔기 때문.
그래도 언젠가 돈을 받아 외국관광에 나설 것을 두 사람은 기대한다. 이때 손자가 나서.독장수 구구는 독만 깨뜨린다'는 속담으로 놀려댄다.
머리 속으로 돈만 계산하다 독을 깨뜨린 경우처럼 허황된 계산은 금물이라는 뜻.이말에 韓씨는.십년 묵은 환자라도 지고 들어가면 그만이다'고 응수한다.
환자는 춘궁기를 맞은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철에 거둬들였던 환곡의 다른 말.늦더라도 반드시 인세를 주겠다는 뜻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책에 이어 아들이 한권쯤 냄직할 때 정말아들이 책을 냈다.
그런데 좀 엉뚱한 책이다.제목은.나를 살려준 속담'..아들'또는.남편'이야기가 아니라 속담을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로 꽉차 있다.
지난 89년 지리산에서 길을 잃고.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는의미를 절감한 후 7년여 동안 손바닥만한 수첩에 기록하고 외운속담 2천여개 가운데 5백여개의 유래와 쓰임새를 정리했다.
죽어있는 속담이 아닌 일상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속담의 되살림이 韓씨의 목표라면 목표.
“연구서보다 용례사전에 가깝습니다.삶의 애환이 농축된 속담 한마디는 열마디의 말보다 전달력이 강하고 대화 분위기도 유쾌하게 이끌죠.” 韓씨의 열성 덕에 그의 가족은 모두 속담 구사 전문가. .아들'또는.남편'이야기는 내년 상반기중 책으로 공개하겠다고 한다.가족 셋이 자가(自家)출판사에서 오순도순 책을 낸 소감을 묻자“가유명사 삼십년 부지(家有名士 三十年 不知)”라 했다.
서로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고 속마음도 털어놓게 됐다는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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