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의 붓자취" 펴낸 국어학자 이응백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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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모든 절차(節次) 끝난 뒤에 입고 신고 하던 것을/활활활 불사르는 바로 그 찰나(刹那)에/탐스런 함박눈송이 펄펄펄 내렸지요.//이 세상 궂은 액을 깨끗이 벗어 치고/새하얀 꽃비 속에 태초(太初)의 모습으로/고(苦)없고 편한 누리에 다시 태날조짐(兆朕)이리.//하늘에서 선녀(仙女)하나 잠시 동안 내려와서/두고두고 못 잊힐 고운 인연(因緣) 고루 맺고/훌쩍궁 날아가 버린 동화(童話)가 생각나오.” 아내의 사십구재(四十九齊)를 맞아 국어학자 이응백(李應百.73)옹이 지은 시조.四十九齊날'12수(首)가운데 마지막 3수다.죽어 일곱번 생사를 거듭하여 삼계(三界).육도(六道)에 다시 태어난다는 사십구재날 아내의 후생안락(後生安樂) 을 비는 시다.44년 하고 또 반년을 같이 살다 지난 93년 먼저 떠난 아내.
그 두고두고.못잊힐' 고운 인연이 이 노학자로 하여금 주기(周忌)마다 한권의 문집을 펴내게 만들며 부부의 소중한 인연을 오늘.불륜의 시대'에 깨우치게 하고 있다.
李옹은 첫주기인 94년.영원(永遠)한 꽃의 향기(香氣)',95년에는.속(續)영원한 꽃의 향기',그리고 최근에는 .혜순(慧橓)의 붓자취'를 엮어 펴냈다.
이 책들에는 자신과 아내의 시.산문.기행문.일기와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글등을 실었다.
“사람들은 자식자랑,아내자랑을 팔불출(八不出)의 하나라 하지요.그러나 그토록 스스로를 잊고 성심껏 살다 내곁을 떠나간 아내에 대해 남겨진 남편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요새도 가끔 꿈에 보여 말도 나누는 바로 그 아내에게요.” 李옹은 49년 아내 민영원(閔瑛媛)씨와 중매결혼했다.당시 서울대 졸업반이던 李옹은 단칸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졸업식때 아랫도리는 감색 바지,위에는 흰 노타이를 갖춰입고 나오라는 지시에 따라 바지는 친정쪽 친척 경찰복을 빌리고흰 노타이는 시집올때 해온 포플린 흰 치마를 북 뜯어 말라 호고 박고 감쳐 지어 입히던 새색시의 모습이 지금도 李옹에게는 눈에 선하다.
당시 아내가 지은 시 한편.
“한달에 서말 살림였기에/긴 여름날을 그냥 넘기니/낮만 겨우면/현기증이 나고 맥이 풀려/얼굴색이 나빠진다./그래도 저녁이면 소화도 안되는/죽 수제비로 끼니를 이었지./…/그래-/아니꼼도 무릅쓰고/머리 숙여 몇 번이고 졸라 얻어/문 닫고 들어앉아/삯버선도 기웠지.” 쌀.보리 서말이 한달살림이던 때가 있었다.점심을 굶어야 하는 여름날의 해는 얼마나 길기만 했던가.그렇게 버틴 저녁식사도 죽이라니.
그래도 아내는 바로 옆동네에서 내로라하며 살던 친정에 주르르달려가 손을 벌리지 않았다.삯바느질로 남편을 훌륭한 학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44년 반을 함께 살다 먼저 간 아내들이 그 시대에 어디 한둘이었을까마는 당사자인 남편에게는 저세상 가서도다시 만나고픈 가장 소중한 사람,인연 아니겠는가.
“부부란 죽으나 사나 서로 돕기 위해 맺어진 인연입니다.요즘부부들은 상대방을 돕기보다 서로 도움만 받으려 하는 것같아요.
그러니 불화도 생기고….우선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살면 가정은 항상 만족하고 평화로울 겁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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