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배울 곳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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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면서 문화 생활을 이룩했다.음식을 아직 손으로 먹는 종족도 있지만 동서양의 차이는 젓가락과 포크를 쓰는 점이다.이것은 농경과 유목문화에서 그 양식이 다른 것이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지 못한 다.삼대(三代)가 함께 살던 시대엔 한식구들에게서 절로 배우며 살았다.젓가락은 두개의 막대기다.안쪽 것은 고정시켜 변하지 않는 것이요,바깥 것은 움직여 변화에 적응하며 먹을 것을 집는다.변불변(變不變)의 원리가 그 속에 있다.두짝을 함께 움직여도 용케 잘도 먹으니 탓할 게 없다.하면 그만이다.그러나 배울 곳이 없고가르치지 않아서라면 사는 방법이 고달플 뿐이다.
명분과 실상이 달라진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쌍둥이는 먼저 태어난 아이가 언니가 되지만 택시에선 먼저 탄 사람이 나중에 내리듯이 실상은 뒤바뀐 것이다.어느 절차이든 나름대로 타당함이 있다.술을 한 손으로 따르면 건방지다고 시비가 붙 지만 우리의한복은 소맷자락이 넓고 길어 그것을 한 손으로 받치고 기울여야하기에 양 손을 쓰는 것이다.또한 잔을 서로 건네 받으며 수작하여 건강상 별로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한다.그러나 순배잔은 돌리되 자기 잔에 따라 마시며,한마음 으로 동료의식을 갖고자 유래한 일이다.
우리의 주도(酒道)는 신라의 풍류를 간직한 포석정에서 살필 수 있다.곡선으로 골을 내어 앉을 자리마다 소용돌이가 돌게 돼있어 과학으로도 풀지 못해 탄복한다.그 한가운데는 마당이자 무대이며,그 푸른 물길에 띄운 표주박이 제 앞에 오면 그것으로 곁에 놓은 술독에서 한잔을 채워 마시는 것이라 한다.자신의 양껏 마시는 법이지 남에게 억지로 권하는 건 아니었다.술잔을 권하며 남에게 술먹이는 주도는 없었다.굳이 찾는다면 조석으로 반주하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없어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곁든다.어른이 독상을 받아 진지를 들 때는 곁에 앉아 편식하시는지,부족한게 없는지 지켜 보며 시중을 든다.술이란 혼자 들면 멋쩍다.
그래서 자네도 한잔 하시게 하며 잔을 내린다.그러 면 그 잔을받아 스스로 잔을 쳐서 마시는데 어른이 쓰는 잔이라 입을 댈 수가 없다.그래서 나이든 사람과 술을 마실 때 고개를 돌리고 마시는 예가 생긴다.
입을 대지 못하면 고개를 뒤로 젖혀 단숨에 털어 넣어야 한다.그러자니 목젖이 보이는 게 민망해서 돌리고 마시는 것이다.
또한 잔을 반배할 때도 어른더러 잔을 들고 있게 하는 게 아니라 제사상에 헌작하듯이 잔을 채워 건네드려야 제대로 된 예법이다.그러고나서 어른이 안주를 권하면 젓가락을 거꾸로 잡고 집어 먹는 것이 제격이다.이렇다면 요즘 회식 석상에 서 어린 사람이 자신의 잔을 윗사람에게 권하는 것은 무례의 소치다.
담배 피우는 법도도 그렇다.곰방대의 길이는 길수록 거드름을 부렸다.긴 담뱃대는 팔이 닿지 않아 부싯돌로 스스로 불붙이지 못해 남이 댕겨 줘야 한다.짧은 궐련에 라이터를 켜드리면 상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꼴이 된다.맞담배를 피우 면 건방지다고 하는 것도 좁은 공간에서 곰방대를 돌려 연기를 내뱉으면 허락되었다.이처럼 음식물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어서 그만한 예법이 생긴 것이다.
남과 마주 했을 때 손을 어디에 두어야 될지 걱정거리다.칼자루를 어떤 손으로 잡았는지에 따라 살의(殺意)여부를 판가름한다.고층빌딩의 승강기를 타고 다닐 때 좁은 공간에서 행동거지는 어때야 하는지 함부로 하는 자들이 많다.몰라서,못 배워서 그러는 건지.예절이란 사소해도 필요에 부응해 만들어진다.서로가 편하기 위함이다.그냥 내버려 두면 절로 되는 게 아니다.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디에서고 배울곳도 없고 가르침이 없다.삶이란 체 험이요 배움인데도 불구하고말이다.
徐동遙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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