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판 IMF, 한국이 주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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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원
미 노스웨스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웰스파고은행 수석부행장, 미 한미은행장 등을 거쳐 월가 상황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5년 미국에서 가장 정확한 경제전망치를 내놓은 ‘최고 예측가’에 손 교수를 선정하기도 했다.

손성원(63·사진)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 금융위기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시장에서는 문제 발생 후 수습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미리 대책을 수립해서 밀고 나가는 리더십을 원한다”며 “문제는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더 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며, 한국 정부가 아시아 국제통화기금(IMF)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금융 체제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했는데.

“잘한 일이지만 1%까지 내려간 미국 금리와의 차이가 아직 너무 크다. 월가에서 한국 정부는 세계 금융시장 회복을 위해 크게 노력할 의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동성보다 심리적 측면이 더 크다. 심리를 안정시키려면 한번에 1~1.5%포인트 정도 내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최소한 유럽중앙은행(3.75%) 수준까지 내려가야 한다.”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데.

“잘못됐다. 앞으로 내린다고 하면 서프라이즈(긍정적 충격)가 없어진다. 반대로 했어야 했다. 추가 인하를 미리 예고할 게 아니라 시장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행동에 나섰어야 했다.”

-특히 한국 금융시장이 불안한 이유는.

“시장은 정부가 더 많은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의 리더십은 문제가 악화되기 전에,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까지 감안해 대책을 수립해 밀고 나가는 것이다. 다른 나라 정책을 따라가는 것도 리더십이 아니다.”

-한국 금융 리더십은 무엇이 잘못됐나.

“미처 준비가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획기적으로 방어 체제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외부에 대고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는 것이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누가 책임을 지고 행동해야 하는가.

“미국·영국을 보면 대통령이나 총리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팀이다. 대통령이 짠 팀이 잘하면 대통령이 신뢰를 얻고, 팀이 잘 못하면 대통령이 신뢰를 잃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경우 과거엔 사람들이 경제팀이 미리 대응책을 생각해서 문제가 커지기 전에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경제팀은) 그런 인식에 조금 문제가 있다.” 

-외환보유액 등 한국의 펀더멘털은 금융위기 극복에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데.

“한국의 펀더멘털이 좋다는 것은 다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시장이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면 눈덩이가 굴러가며 금세 커지듯 상황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미국 정부의 대응에서 배울 점은.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정책을 ‘문고리 정책’이라고 한다. 정부 손해를 따지지 않고 문고리라도 가져오면 돈을 빌려줄 정도로 경제 살리기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시장 어음을 직접 FRB가 산다. 제너럴 일렉트릭(GE)도 FRB에서 돈을 빌려 쓴다. 과거에는 신용 좋은 은행과 최고급 담보만 취급했는데 지금은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좋지 않은 담보도 다 받아준다. 이 같은 조치는 의회의 동의 없이도 시행할 수 있어 매우 강력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배울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가.

“아시아판 IMF 창설을 적극 제안하고 싶다. 현재의 IMF나 세계은행은 전부 미국·유럽 중심이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의 금융 파워가 커졌고 전문가도 많은 만큼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재정·금융·환율·무역 정책과 관련해 아시아의 컨트롤 타워가 생기는 것이다. 경제가 국제화된 만큼 정책도 국제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 IMF에서 각종 정책을 사전 조율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음 달 중순 미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공식 제안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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