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문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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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은(1960~ ) '문고리' 부분

삼년을 살아온 집의
문고리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았던 문
헛헛해서 권태로워서
열고 닫았던 집의 문이
벽이 꽉 다물렸다
문을 벽으로 바꿔버린 작은 존재
벽 너머의 세상을 일깨우는 존재
문고리를 고정시켰던 못을 빼내고
삭은 쇠붙이를 들여다 보니
구멍이 뻥 뚫린 해골처럼 처연하다
언젠가 나도 명이 다한 문고리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나라는 문고리를 잡고 열린 세상이
얼마쯤은 된다고 믿을 수만 있다면!
(후략)



문을 문이게 하는 것이 작은 문고리였다니! 그것이 떨어져 나간 뒤에야 속수무책 닫힌 문 앞에서 떠올려본다. 누군가의 부재(不在)를, 또한 그리 머지않은 나의 부재를. 죽음이란 세상이 더 이상 '나'라는 문고리를 통해 열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고요한 벽으로 남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그만 헛헛해져 방문을 삐걱 열어본다. 아, 아직 살아 있구나.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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