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80년대 자동차 기술로 라오스 최대 기업 일구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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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주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30일 폐막한 ‘세계한상대회’에 라오스 최대 민간기업인 코라오그룹의 오세영(47·사진) 회장이 참석했다. 오 회장은 라오스 국민브랜드 코라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만드는 회사를 10여 년 전 맨손으로 일궜다. 자동차는 아직 조립생산 수준이지만, 오토바이는 국산화율 40%대를 달성한 라오스의 자존심이다. 매출액은 한화 기준으로 2000억 원이 채 안 돼 한국 중소기업 수준이다. 하지만 산업기반이 약한 라오스에선 경제를 이끄는 선두기업이다.

그는 “리딩기업이라는 점에서 라오스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실천하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라오스 자동차 유통시장의 53%, 오토바이시장의 35%를 점유하면서도 꾸준히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3년 전에는 이 나라에 흔한 식물인 자트로파를 이용해 바이오 디젤 사업에 뛰어들었고, 최근엔 인도차이나뱅크를 만들어 금융업에 진출했다.

오 회장은 라오스로 가기 전 1990년 말 코오롱상사 베트남지사에 근무하다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은 물건이 없어서 못 사는 구조였죠. 생각해보니 내겐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공장이 있더군요. 안 만드는 게 없는 한국에서 사다 베트남에서 팔면 되는 거였어요.” 그는 그로부터 5년간 빗자루에서 헬리콥터까지 베트남에 팔았다.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때부터 그는 “재벌 흉내를 냈다”고 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필리핀 부동산 개발에 손댔고, 12개 국에 지사를 둬 사업 다변화를 했다. 그리곤 한 순간에 망했다.

“건방이 나를 고꾸라지게 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다시 빈손이었다. 그리고 96년 찾아간 곳이 라오스였다. 여기서도 그는 ‘한국 공장’을 발판 삼아 일어섰다. 한국 중고차를 사다 팔면서 재기했다. 또 중고차 부품을 사다 조립하는 공장을 세웠고, 오토바이 생산업체를 설립하는 등 사업을 키웠다. 이때 그는 세 가지 사업원칙을 세웠다. 차입경영을 하지 않고, 동업하지 않고, 번 돈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망한 뒤 ‘결국은 빈손이구나’하고 깨달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고 했다. 실패가 ‘일을 위해 사업하는 사업가’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라오스에선 1원 한푼 숨기지 않는 투명경영을 했고, 직원들이 좋아하는 직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했다. 그는 “이것이 외국인이면서도 라오스 최대기업으로 큰 비결”이라고 했다. 외국인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크면 반드시 지역 경쟁자들의 견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무조사도 수십 차례 받았지만 걸릴 게 없어 무사했고, 이를 계기로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이 신뢰가 또 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오 회장은 “라오스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했다. 얼마 전 국내 TV에서 코라오의 성공스토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는 “라오스가 워낙 작은 시장이어서 예전엔 경쟁자가 불어날까 봐 노출을 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오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젠 제대로 알려져서 좀 더 잘 살게 되도록 돕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TV프로그램 제작에 응했다고 했다.

그는 “개발도상국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70, 80년대 기술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며 “한국 젊은이들이 개도국 시장에 더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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