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의 남자 읽기] 밤이 무서워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6면

부부간에 성(性)행위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어릴 때부터 수재로 불리던 H씨(38).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9년 전부터 누구나 선망하는 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총명함은 직장에서도 빛을 발해 항상 선후배.동료의 귀감이다. 이처럼 바깥생활은 완벽에 가깝지만 잠자리에 대한 아내의 불만 때문에 마음은 늘 어둡다.

아내는 대학생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나 12년 전 결혼했으며 슬하에 아들 형제를 두고 있다. 그의 아내 역시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결혼 후 처음 몇 년은 아내와 친구처럼 편한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그러다 둘째를 출산한 지 1년쯤 지나 아내가 잠자리에서 H씨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처음엔 "자기 혼자만 좋으면 되냐"는 식의 말을 한두 마디 던지더니 차츰 불만의 빈도와 강도를 높여갔다. H씨는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처음엔 아내의 말을 무시하기도 했고 때론 "무슨 여자가 그렇게 밝히느냐"는 식으로 흉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3년 전부터는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아내가 "병원 치료 좀 받아보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마다 H씨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아내와의 잠자리가 싫어졌고 실제로 지난 1년간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한 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아내가 평상시에도 H씨를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H씨는 고민이다. 자신을 홀대하는 아내 때문에 병원까지 가기는 정말 싫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지내는 것도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이제라도 자존심을 굽히고 아내의 요구를 따라야 할까.

먼저 H씨는 성생활이 부부간 애정을 유지.증폭시키기도 하고 반감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성 문제는 아내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적극 해결해야 된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만족스러운 성생활은 남성은 남성으로서,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행위 없이 금실 좋은 부부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부부간 상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즉 '성적 균형'이 맞았을 때 가능하다. 성적 균형은 남녀간 '성욕'과 '성기능'이 일치할 때 가장 이상적이다. 즉 부부 모두 성욕이나 성기능에 문제가 있을 땐 괜찮다. 하지만 H씨처럼 아내가 남편의 성기능에 문제를 제기할 땐 이미 균형이 어긋난 상태다. 따라서 이를 교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서로 아끼는 원만한 부부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다행히 21세기 첨단 현대의학은 성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H씨는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성 상담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처음엔 성치료를 위한 진료실 방문이 서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H씨가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일이다.

왠지 내키지 않는다는 감정 때문에 아내와의 불화를 지속하면서 남성으로서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삶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