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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 방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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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현대의 위조지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미 달러화의 ‘수퍼노트(supernote)’다. 수퍼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위조에 사용된 화폐 제작 기술 수준이 원본보다 더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달러화에 사용된 모든 위조방지 기술을 돌파한 까닭에 전문가조차 집중적인 조사를 거쳐야 판별이 가능할 정도다. 현재 유통되는 달러화 1만 장당 한 장은 수퍼노트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조원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북한이 범인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이 유력하지만 이란·시리아뿐 아니라 미국 CIA까지 의심을 받고 있다.

수퍼노트를 예외로 하면 판별이 사실상 불가능한 위조지폐는 없다. 하지만 컬러 복사기, 스캐너와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범죄집단이 아니어도 외형상 비슷한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이런 위조를 막기 위해 첨단 기술을 총동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복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소위 ‘유라이온(EURION)’ 마크다. 우리의 1만원권 화폐 앞·뒷면에 있는 오리온 별자리 모양의 작은 원들이 그 예다. 신형 컬러 복사기는 이런 표시가 있는 화폐는 복사 가 안 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마크를 채택하고 있다.

둘째는 컴퓨터의 포토샵이나 페인트샵 프로 같은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를 대상으로 하는 ‘위조방지시스템(CDS)’ 기술이다. 화폐에 투명 인쇄된 특정한 디지털 표식을 인식하면 컴퓨터에서 해당 이미지를 스캔해 불러오거나 수정하는 작업을 차단한다. 서방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 30곳이 참여한 ‘중앙은행 위조방지 그룹’에서 회원국에 보급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여기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권은 컴퓨터를 이용한 위조지폐 방지책이 빈약하다.

내년 초로 예정됐던 10만원권 발행이 독도 표기를 비롯한 도안 논란 때문에 상당 기간 늦어질 전망이다. 차제에 발행을 더 늦추고 5만원권, 10만원권에 CDS 기술을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적발되는 1만원권 위조지폐는 컴퓨터와 스캐너를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위폐는 민간에서 2%, 금융기관에서 37% 적발됐고 나머지는 한국은행에까지 갔다니 문제가 심각하다. CDS 대책 없이 10만원권이 나오면 아마추어 위조범이 양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