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섹 “한국 경제에 베어스턴스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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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한국이 아시아 투자등급 국가 중 가장 위험하다는 인식을 투자자들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월가의 유명 경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사진)이 본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보다는 투자자들의 불안과 의심이 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4일 블룸버그 통신에 게재한 ‘한국 경제에 베어스턴스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칼럼에서 한국 경제를 올 초 몰락한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비유했다.

베어스턴스의 몰락이 인터넷을 통한 루머 확산 등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가속화된 것처럼 한국도 비슷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1997년 상황과 비슷해져 가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마치 ‘자기실현적 예언’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피해 갈 것이란 충분한 증거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한국 기업들이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튼튼해졌고, 은행도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24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 때문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조건 외국 언론만 탓할 일은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페섹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는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특유의 취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의 은행들이 1997년 외환위기 때 범했던 실수를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해외 차입을 늘리고, 그것도 단기로 채권을 발행한 것이 신용경색이 닥치면서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런 불안 요인이 커지면 한국이 투기세력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헤지펀드와 투기세력이 이제는 한 회사가 아니라 한 나라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한국이 아이슬란드의 ‘다음 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보다 과감한 조치를 통해 10년 전 같은 위기가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베어스턴스=올해 3월 JP모건으로 넘어간 미국 5위 투자은행.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진 뒤 주요 투자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쓰러져 전 세계 금융 불안의 기폭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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