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에 첩보영화처럼 가짜 여권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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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탈북자들에게 자유를 찾아준 영웅.”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 8월에 출간한 『북한 탈출(Escaping North Korea)』의 서평에서 저자 마이크 김(31·사진)씨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지난 4년간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주민들을 탈출시킨 공을 높이 산 것이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태평양담당 보좌관인 마이클 그린과 빅터 차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추천사에서 그의 활약을 치켜세웠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할 때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마크 파머는 추천사에서 “공산독재정권에 시달렸던 동유럽 주민처럼 굶주리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전화통화와 e-메일 인터뷰에서 “북한에서도 상류층을 중심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남몰래 한국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며 “북한 사회가 자유롭게 될 날이 머잖았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평양과 서울은 차로 3시간이면 가는 거리인데 탈북자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수만 리에 이르는 험한 길을 움직인다”며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씨가 탈북자 돕기에 나선 것은 2003년부터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중국 여행을 하며 탈북자의 참상을 들었다. 탈북자들이 산속에 숨어 지내며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중국 공안에 적발되면 북한으로 이송돼 사형될 수도 있다고 했다. 탈북자 돕기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그는 귀국한 뒤 1년 간을 준비했다. 며칠씩 굶고 마룻바닥에서 자며 탈북자들과 같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교회와 개인 등을 통해 연간 20만 달러(약 2억7000만원)에 해당하는 기부금을 모은 그는 탈북자 구호단체인 크로싱보더스(Crossing Borders)를 만들어 중국에서 활동했다.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와 함께 100여 명의 탈북자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했다. 그는 “탈북자들은 나치정권 치하의 유대인처럼 위장된 문으로 연결된 다락방에서 생활한다”며 “다들 공안이 들이닥칠까 봐 불안에 떤다”고 말했다. 김씨는 탈북자에게 가짜 여권을 구해주려고 첩보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을 하기도 했다. 태국 방콕 공항에서 위조 여권 브로커를 만났는데, 브로커가 “48시간 후 e-메일을 확인하라”고 했다. e-메일이 지시한 동남아시아의 공항 화장실 천장을 샅샅이 뒤져 여권을 찾았다.

김씨는 “북한은 미국 사람을 ‘미국 X’라고 가르쳐, 나와 생활한 탈북자도 나를 ‘미국 X’이라고 부르더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이란 등을 ‘악의 축’으로 지정했듯, 북한도 미국·일본·한국을 원수로 여기며 증오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올해 조지타운대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한 김씨는 미국에서도 탈북자 구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구호단체 ‘크로싱보더스’ 활동도 유지하며 음식과 약품 등을 중국에 보내고 있다. 지난 달 미국이 탈북자 여성에게 영주권을 준 사실에 대해 그는 “미국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북한 주민들을 도우려는 상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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