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신서'시리즈 100종 돌파 동문서 신성대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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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화랑과 골동품상이 빼곡한 서울인사동 골목.이곳 한켠 허름한 건물에 둥지를 튼 도서출판 동문선의 신성대(辛成大.42.사진)대표는 출판계에서 별종으로 소문난 사람이다.독불장군이랄까.책 하나에만 매달려 출판인들의 모임에 얼굴 한번 내밀 지 않는 외곬이다. 辛씨가 특유의 고집을 살려 지난 8년동안 펴낸 「문예신서」가 민속학자 심우성(沈雨晟)씨의 『우리나라 민속놀이』로 1백종을 넘어섰다.「문예신서」시리즈는 동양학을 중심으로 서양의연극.미술.민속등 범부(凡夫)의 손길이 가기 어려운 전 문교양서로 채워졌다.그래서 재판(再版)을 찍은 책이 10종도 안된다.존 버거의 『이미지』,하신(何新)의 『신의 기원』등 많이 나가야 겨우 6천여부.대부분 1천부가 안된다.
『돌아보니 미친 짓 같아요.안 팔릴 책만 냈거든요.대중은 아예 생각도 없었어요.』 다소 오만한 인상을 준다.하지만 辛씨의속뜻은 깊다.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폭넓은 교양인만이 다가오는 21세기,즉 전방위 무한경쟁시대의 주역이 된다는 신념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책도 냈습니다.그런데 어쩐지 허전했어요.돈만 좇자고 생각하니 사람이 비천해지는 느낌이었어요.유행따라 독자들 입맛에 맞추며 쉽고 편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오로지 고급독자를 겨냥한 문예신서에 진력한다.다른 출판사에서 타산성을 이유로 꺼렸던 책을 떠안은 경우도많았다.반면 수업료도 톡톡했다.1종당 평균 5백만원의 적자.84년 출판사 설립 이전 7년간의 외항선 기관사 시절에 모은 종잣돈은 어느새 사라졌고 남은 것은 눈덩이같은 빚뿐.있던 집도 넘기고 지금은 전세방에 산다.출퇴근도 전철을 이용한다.흔한 노래방도 한번 안갔고 가족과 외식조차 못했다.
『전문서만 고집하면 회사가 쓰러진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우리출판계에 퍼져 있어요.혹시라도 이같이 나쁜 선례를 남길까봐 오기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辛씨는 또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힘줘 말한다.출판에 전념하기 위해 90년에 차린 중국전문서점도지난달 정리했다.
『앞으로의 살길은 전문화와 대형화 두가지예요.동서양 양서를 두루 포괄한다는 원칙아래 내년에는 교양총서.중국고전 완역총서.
학술 계간지.몇몇 서양철학자 전집도 낼 예정입니다.』 나이보다어려보이는 동안(童顔)에 의지가 넘친다.그리고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기 위해 매일밤 10시까지 편집실 불을 밝힌다.토요일.휴일도 없다.얼굴을 맞대고 가족과 식사하는 날이 1년에 사흘도 안된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니었다 .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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