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動法 개정 싸고 눈치보기 바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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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한데 대해 여야의 반응이 미묘하다.통일된 목소리가 없고 의원들마다 입장이 제각각이다.
신한국당 지도부는 고위 당정회의에서 방침이 결정된 이상 정부법안이 상정되면 강력히 밀어주자는 원론만 밝히고 있다.당 정책관계자는 『노사 양측에 맡겨두면 백날 가도 안될게 뻔하지 않으냐』며 결국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두 둔할 뿐이다. 그러나 의원들중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시큰둥한 반응도 만만찮다.노동운동가 출신 김문수(金文洙.부천소사)의원은『누가 책임을 지려고 이렇게 서두르느냐』며 우려를 표시했다.정부안이 확정되면 여당내에서도 의원들의 이해관계와 입장에 따라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쏟아져나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연내 처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부분에대해선 목소리가 똑같다.당론을 딱 부러지게 밝히기 어려운 문제인만큼 일단 시간을 벌자는 계산같다.
국민회의 이해찬(李海瓚.서울관악을)정책위의장은 『우리당이 반드시 노(勞)와 사(使)중 어느 일방의 입장과 같다고 할 수 없다』고 고민을 토로한뒤 『연내 통과는 무리』라고 말했다.예를들어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은 국민회의의 당론이 다.하지만 내년대선(大選)이 있는데 정치활동을 허용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으므로 98년 지자제 선거 이후부터 허용하자고 한다.
또 당내에선 기업인 출신 박상규(朴尙奎.전국구)부총재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중소기업은 다 망한다』는 입장을,노동운동가 출신인 방용석(方鏞錫.전국구)의원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복수노조.3자개입.공무원 노조설립이 허 용돼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자민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아직 확정된 입장이 없다.허남훈(許南薰.평택을)정책위의장은 『정부안이 나오면 당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먼저 자기당 입장을 제시하기보다 정부안이 나오면 그걸공격해 책임은 최소,이익은 최대로 챙기려는 네거티브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는 노동법 개정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 아무도먼저 젓가락을 대지 못한채 눈치만 살피는 형국이다.하지만 정부안이 확정돼 국회에 상정되면 그때부터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바탕의 회오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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