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금 수령 기준 개선안도 이것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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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수산식품부가 마련한 쌀 직불금 개선안에 여러 가지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대로 시행하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논 주인이 쌀 직불금을 수령하는 바람에 실제 농사를 짓고도 지금까지 쌀 직불금을 타지 못한 임차농(소작농)은 앞으로도 직불금을 못 받을 전망이다. 또 논이 좁아 벼농사 소득이 많지 않은 농가가 부업 등 다른 일로 돈을 좀 벌게 되면 역시 직불금을 타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23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개선안은 직불금 신청 자격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2005~2008년 사이에 직불금을 한 번이라도 받았고,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농업인만 직불금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고치기로 했다.

개정안처럼 바꾸면 논농사로 먹고 사는 진짜 농민에게 직불금이 돌아간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번에 직불금 부당 수령을 전면 재조사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직불금 수령 실적이 스스로 농사를 지었다는 제일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농업이 주업’이라고 못 박아 농사 말고 다른 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직불금을 탈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농업인 단체 등은 이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임차농 대신 지주가 직불금을 탄 경우를 보자. 이런 임차농은 ‘2005~2008년 사이에 직불금을 한 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걸려 앞으로도 직불금을 신청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대개 임차농 한 명이 여러 지주에게서 논을 빌리기 때문에 새 규정에 걸려 직불금을 못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지 임대차 계약을 한 지주 모두가 직불금을 가로채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의 박상희 정책차장은 “지금껏 직불금을 전혀 못 받은 임차농이 상당수인 게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농업인’이란 조항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논농사를 지어 한 해 1000만원을 벌고, 아내는 읍내 식당에서 일해 월 100만원씩 1200만원을 번 가구는 직불금을 탈 수 없다. 농업외 소득이 더 많기 때문이다.  

정명채 한국농업산업학회장 은 “직불금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임대차 계약을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한 데 정부가 이에 대해선 손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임차농의 90%가 구두 계약만 하고 있어 지주가 직불금 신청을 했을 때 불법임을 증명할 ‘임대차 계약서’를 들이대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농지 임대차 계약을 한 뒤 반드시 지자체에 내게 하면 지주의 부당 수령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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