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 옆에 사는 사람 같고 음악은 첫사랑 같은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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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홍대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난 시인 강정씨. 세번째 시집 『키스』를 펴낸 그는 “시란, 기본적으로 다 연애시”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그는 시인이다. 그것도 등단 16년째인 ‘중견시인’이다. 전인권부터 수잔 손택까지 아우르는 칼럼으로 글발도 날렸다. 그뿐인가. 음악도 한다. 침소밴드의 리드보컬이다.

시와 음악과 산문을 종횡무진하는 시인 강정(37)이 세 번째 시집 『키스』를 냈다.

첫 번째 시집 『처형극장』을 내고 나서 두 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건만』을 내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이번엔 2년 만이다. 그동안 안으로 빚어왔던 에너지가 연이어 폭발하고 있는 셈이다. 그를 23일 오전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키스. 어감이 좋잖아요. 키스할 때 느낌이 시 쓰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시집 제목에 대해 묻자 대답이 시원시원하다. “시는 기본적으로 다 연애시”라고 말하는 그답다. ‘키스’ ‘사실, 사랑은…’ ‘고등어 연인’ 등 사랑의 속성과 연애의 순간을 포착한 시들이 눈에 띄는 이유다.

“연애라는 건 어쩌면 시작부터 불가능한 것일지도 몰라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궁이죠. 아주 맛있는 미궁. 그렇게 데고 나서도 또 들어가고 싶잖아요. 하하.”

그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열렬한 구애가 시가 됐다. 순간을 포착할 수밖에 없는 카메라로 영원한 시간을 담기를 바라는 욕망과도 같다.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카메라 한 대로 모든 시간을 포획하려는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한다’(‘카메라, 키메라’)는 시구처럼 말이다.

그 불가능을 돌파해버리는 키스로 인해 “너는 내 몸이라는 凶家(흉가)에서 춤추는 무희”가 된다. 키스는 “네 인생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탕진”하는 순간이다. “내 속에서 죽었던 것들이 관 뚜껑을 열듯 내 몸을 열고” 다시 “문 열린 너의 바깥으로 날아”가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다.(‘키스’) 이별이 그 순간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내 몸 안에서 죽지 않은 누군가의 심장이 짐짓 예술적으로 교태를”(‘낯선 짐승의 시간’)부리기 때문이다.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시어들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있진 않을까. “시가 어렵다뇨. 다른 책들과는 다른 소화기관으로 소화시키는 것일 뿐이에요”라며 허허 웃어 보인다.

시인은 이런 감정들을 시로만 표출하지 않는다. 노래도 하고 곡에 가사도 붙인다. “공연할 때는 내가 내가 아니에요. 안 해본 사람은 모르죠. 시는 혼인신고도 안 했는데 계속 내 옆에서 살고 있는 그런 사람 같고, 음악은 20년 만에 만난 첫사랑 같아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 같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부럽다고 했다. 그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젊었을 때는 뭐 좀 재미있는 게 없을까, 늘 이리저리 떠돌았죠. 그런데 이제는 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적어도 여유가 있는 척을 하게 되죠. 마음대로 살아온 줄 알았는데 나를 꿰고 있는 어떤 맥락을 봤거든요.”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매혹을 느끼고, 도전하고 결국엔 그것과 엉켜버리는 것. 그것이 강정의 ‘맥락’이다. 사랑이든 인생 그 자체이든.

임주리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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