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지적소유권, 사회와 공유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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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세계 최대 한자사전(16권)의 완간을 이끈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은 “사전은 민족을 대표하는 사업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단국대는 28일 『한한대사전』 완간 출판 기념회를 연다. [단국대 제공]

 사전 편찬이란 어떤 작업인가. 자존심 높은 한학자들은 문자 하나의 해석을 놓고도 멱살잡이까지 갔다. 표제어 글자 하나가 누락된 것이 뒤늦게 발견돼 한자를 다시 순서대로 배열하느라 편찬 작업이 1년 가까이 지연되기도 했다. 15년 예정했던 작업이 30년으로 불어났다. 5만5000여 자, 45만여 개의 단어를 수록했다. 200자 원고지로 212만장을 메웠다. 쌓아 올리면 빌딩으로 53층 높이다. ‘세계최대의 한자사전 편찬’이라는 대역사의 끝. 30년 만에 정상에 올라서 보니 새로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사전 편찬이란 그런 작업이다.

단국대가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16권으로 최근 완간했다. 한자 사전으로 전공자들에게 권위 있는 일본의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이 수록한 4만9000여 자, 39만여 단어보다 규모 면에서 앞선다. ‘우공이산(愚公移山)’과 같은 뚝심으로 학술적 대역사를 이끌어낸 장충식(76) 단국대 명예총장을 만났다. 평생의 작업을 일단락한 그는 “『한한대사전』에 대한 지적 소유권을 단국대가 배타적으로 고집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30년간 310억원을 들인 사전이다. 장 명예총장은 “국가·기업이나 독지가들이 사전 후속 사업에 도움을 준다면 언제든지 사전에 대한 지적소유권을 국가·사회와 공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투입된 시간, 비용에서 엄청난 사전 편찬이었다. 지적 소유권을 사회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전 편찬은 지금부터 다시 새로운 출발이다. 사전은 살아 있어야 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40년 이상 끊임 없이 개정·증보되지 않았나. 단국대가 시작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이 한국의 지적 문화유산으로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길 바란다. 당장 사전의 인쇄본을 디지털화하고 온라인에서 검색 가능하게 하는 작업에 5년을 예정하고 있다. 또 이 사전을 기초로 해서 전문 사전들이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후속 작업에 사회적 관심이 있길 바란다.”

-전문사전의 후속 편찬이란 무엇인가.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은 현재로선 세계 최대인 5만5000자의 한자를 수록한 사전이다. ‘딕셔너리’(=사전)보다 ‘엔사이클로피디아’(=백과사전)에 가깝다. 인명·지명과 제도·관직명, 서책 이름과 종교용어 및 동·식물명을 꼼꼼하게 찾아 쓰임새와 뜻을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이러한 쓰임새를 주제별로 분류하면 별도의 전문 사전이 생긴다. ‘한한의약사전’ ‘한한인명사전’ 등이 이 사전으로부터 가지를 치는 것이다. 사전의 문화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하겠다. ”

-사전 편찬을 결심한 계기는.

“1950년대 말 고려대에서 동양학으로 석사 논문을 준비할 때였다. 일본의 ‘모로하시 사전’(=『대한화사전』)말고는 참조할 사전이 없었다.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에 한학을 전수해 줬는데 이제는 우리가 일본 것을 가져다가 한학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중국이나 대만에선 국가 차원에서 했던 작업이다.

“일본의 모로하시 사전에 대한 중국의 충격은 더 컸을 것이다. 대만은 정부가 중심이 돼 『중문대사전』(5만여자, 40만 단어)을 10년 만에 완간했고, 중국은 5개 성(省)과 상해시가 연합하고, 43개 대학·연구소 등이 총 집결해 1993년 15년 만에 『한어대사전』(2만3000여자, 38만 단어)을 냈다.”

-1978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를 본격 가동하면서 사전 편찬 사업의 막이 올랐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1967년에 단국대 총장에 취임하면서 사전 편찬에 나섰다. 71년에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1896~1989) 선생을 동양학연구소장으로 모셨다. 선생은 처음엔 고령을 이유로 소장직을 고사하셨다. 내가 ‘선생이 오셔야 인재가 모인다’며 정말로 ‘삼고초려’를 했다. 대학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완간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로선 대학에서 최고 연봉을 해드렸더니 몇 달 째 봉급을 안 타가시더라. 늙은이가 그래서 되겠냐며 다른 교수 월급 정도만 주면 받겠다고 하시더라.”

-사전의 제1권은 99년부터 출간됐는데, 초기 작업이 길어진 이유는.

“사전은 초기 작업이 중요하다. 단어 선정의 자료가 될 문헌을 찾는 일만도 어마어마하다. 모든 문헌을 다 쓸 순 없으니 그 한계를 정하고 일일이 단어를 뽑아내 카드에 기록한다. 그 단어가 최초로 수록된 문헌을 밝히고, 한·중·일 간의 용례 비교도 해야 한다. 문자·어휘 하나하나에 대해 토론을 거친다. 인명·지명 등 고유명사의 수록 범위를 따지는 데도 수년이 걸렸다.”

-5만5000여 자의 한자 폰트 개발도 큰 작업이었다는데.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지정한 기본 한자 4880자 이외의 한자를 텍스트화 하는 작업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이의 해결을 위해 사전 출간 초기부터 서울시스템(현 에듀패스)과 제휴해 자체적으로 전산 폰트를 제작했다. 사전에 수록된 5만5000여 자뿐 아니라 6만2400여 자의 한자 글꼴을 새로 만드는 큰 작업이었다. 컴퓨터 글꼴 개발을 하지 않으면 애써 만든 사전의 전산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한국 문헌의 용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 점은 한계로 인정한다. 모든 문헌의 용례를 다 수용하다가는 사전 편찬 작업이 무한정 연장될 우려가 있었다. 사전을 편찬하는 가운데서도 무수한 선조들의 한문 문헌이 발굴됐다. 일각에선 한문으로 된 우리의 고전 문헌 중 번역된 것은 3%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사전 편찬은 지금부터 또 다른 출발이다. 우리 선조가 남긴 한문 문헌에서 쓰인 한자의 용례들이 지속적으로 사전에 보충돼야 한다.”

-사전 편찬의 의의를 정리한다면.

“사립대인 단국대가 이 사업을 30년에 걸쳐 완수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간 장학금, 이공계 발전 등 대학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업에 재원이 충분히 가지 못해 미안함도 크다. 앞으로의 사전 후속 사업에 국가·사회의 관심이 컸으면 한다. 이번 사전 편찬으로 한자 문화권의 주축인 한·중·일 3국에서 사전 3각 체제가 정립됐다고 하겠다. 한국에선 한자 해득 세대가 점차 사라져서 문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문헌과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단절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역사적 단절을 막기 위한 시도가 이번 사전 편찬의 의의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북한 학자들도 완간되면 사전을 꼭 보내달라며 관심을 갖더라.”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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