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한국의역군들>16.한국해양연구소 이홍금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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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뭐 참신(?)한 것 하나 안올라 오나.』산호.이끼벌레.해면등이 가득 담긴 망태기가 뱃전으로 들어올려질 때마다 그녀는 이런 기대감으로 설렌다.
한국해양연구소 이홍금(李洪錦.41)박사.해양 미생물에서 항암제나 항종양제등으로 사용될 수 있는 신물질 후보를 「캐내는」 것이 주업인 李박사의 첫 작업은 이렇게 바다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제가 찾는 미생물들이 바닷속 개흙이나 산호.해면등을 서식처로 삼는 수가 많거든요.잠수부 아저씨가 뭔가 새롭게 보이는 「시료」를 건져올리면 「여기서 혹시(신물질이)하나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곤 하지요.』 바닷속 미생물에서 신물질 찾기는 어떤 의미에선 현대판 난파보물선 건져올리기와 같은 것.신물질이 항암제등으로 상용화될 경우 수백억~수천억원의 이득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李박사는 지난 91년이래 이런 바닷속 「보물」찾기를 6년째 계속해오고 있다.『육지에서는 이미 꽤 많은 「보물」들이 나왔지요.항생제인 페니실린도 그중 하나고요.그러나 해양미생물은 신개척지와 같아요.전세계적으로 이제 겨우 10여종의 「해양 신물질」이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는 정도거든요.』 국내에서 미생물유래해양신물질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은 李박사를 포함,3~4명 안팎.
그중 李박사는 오랜 기간 이 분야를 끈질기게 파고든 국내의 대표적 연구자중 한 사람이다.
『워낙 지루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연구예요.이제야 막 겨우두어종을 신물질 후보로 낙점했어요.지방산 계통의 물질인데 예비실험결과 항암효과가 꽤 뛰어나더군요.그러나 실용화되려면 통과해야할 관문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낙관은 이르지요.』 그녀가 찾아낸 신물질 후보들은 탄소 16개를 기본 뼈대로 하고 있는 것들. 해면과 공생하는 해양방선균(스트렙토마이세스속)이 생산하는 물질로 암세포증식과 관련한 효소의 활성을 방해하는 기능을 갖는것으로 나타났다.
만 5년이 넘는 연구끝에 얻은 신물질 후보군이니 어떤 면에서는 「애」하나 만들기보다 훨씬 어려운 셈이다.
이는 미생물이 연구자 마음대로 빨리 자라주는 것도 아닌데다 까다로운 실험절차를 건너뛸 수 없기 때문.
미생물 현장 채취.접종→유망균 선발.배양→독성실험→항암효능등생리활성기능 테스트→대량 배양→신물질 분리정제.구조분석등의 한사이클을 도는데 보통 6개월,길면 2년이 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루한 선발과정에도 불구하고 추출물질이나 미생물의 대부분은 쓰레기통행을 피할 수 없다.
李박사는 『1천개의 미생물을 훑어봐야 여기서 한개의 신물질 후보가 나올까 말까 하다』며 『약값이 왜 비싼지 알 것같다』고웃는다. 하지만 미생물이 쓰레기통으로 갔다고 해서 실제 완전용도폐기는 아니다.
실용화는 안될지라도 미생물 나름의 특성이 파악돼 향후 해양미생물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李박사 자신도 『장차 해양미생물 유전자 은행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국내 생물자원 파악과 보전이라는 차원에서도 꼭 이뤄져야 할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연구원인 엄마가 최고』라는 아들(8)의 응원과 독일유학(브라운슈바이크공대.미생물학)시절 만난 남편(회사원)의 외조덕에 연구가 벽에 부닥쳐도 힘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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