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가 4% 내리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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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1일 국무회의에서 올해 추곡 수매가를 지난해보다 4% 내리기로 결정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80kg짜리 1등급 쌀은 16만1010원, 2등급 쌀은 15만3750원에 수매된다. 매입량은 516만섬으로 지난해보다 5만섬 줄어든다. 수매 물량이 줄어든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쌀과 관련해 쓸 수 있는 보조금의 한도가 매년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해 쌀 보조금 한도는 지난해보다 750억원 줄어든 1조3600억원이다.

농림부는 모내기철에 농민들의 자금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해 이달 중순부터 정부안을 기준으로 농가와 약정을 맺고 수매가의 60%까지를 선금으로 줄 계획이다. 또 올해부터는 시.군별로 지역 특성과 품질을 기준으로 선정한 3개 안팎의 품종에 한해 수매를 실시하기로 했다.

농림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 같은 안을 상정했으나 농가 소득 보장 대책을 더 검토하라는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시로 의결이 보류됐었다. 농림부 박해상 차관보는 "국내외 쌀값 차이를 줄이고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선 수매가 인하가 불가피하다"며 "소득 보전을 위해 농가 보조금 제도를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쌀이 수입되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수매가는 95년, 97년, 2002년, 2003년엔 동결됐으나 96년과 98~2001년은 4~5.5% 올랐다.

김영훈 기자

[뉴스 분석] 수입쌀과 가격차 줄여 개방충격 덜기

정부가 올해 추곡수매가를 내리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1995년 발효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정에서 국내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이후 쌀값을 조금씩이라도 내렸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26%나 올렸다. 일본은 같은 기간 수매가를 13% 내렸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쌀값은 국제 시세에 비해 네배 이상이나 비싸졌다. 올해 다시 쌀 협상을 벌이고 있는 정부로선 수매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쌀 수입의 관세화 여부와 관계없이 외국산 쌀의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입 쌀과 국산 쌀의 가격 차이가 클수록 국내 농가가 받게 될 충격은 더 커진다. 쌀이 800만섬이나 남아도는데도 쌀값이 오르는 비정상적인 가격 구조를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도 없다.

정부가 수매하는 쌀은 전체 생산량의 20%가 안 된다. 그러나 수매가가 국내 쌀 시장에서 일종의 '기준 가격'으로 통하기 때문에 수매가를 내리면 전체 쌀값도 떨어지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국회에서 정부의 인하안을 그대로 수용할지다. 지난해 정부는 2% 인하안을 제시했으나 농민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수매가를 동결시켰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수매제를 없애는 대신 쌀 경작 농민에게는 보조금을 줘 소득을 보전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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