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럼즈펠드, 용기있게 美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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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감행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0일 국방부를 방문,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과 관련해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의 보고를 받았다. 이어 미 전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을 지목하면서 "당신은 대(對)테러전쟁에서 미국을 용기있게 이끌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라크 포로 학대 책임논쟁의 한복판에 있는 럼즈펠드 장관에 대해 "미국은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빚을 지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부시의 승부수=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럼즈펠드에 대한 비난은 이라크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강하게 럼즈펠드를 감싸고 도는지에 대해선 해석이 많다.

무엇보다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어차피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은 회피나 변명으로 덮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럼즈펠드를 경질해도 야당의 공세가 멈출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면으로 럼즈펠드를 감싸고 도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내의 여론이 럼즈펠드 유임 지지(69%)가 경질 요구(20%)보다 훨씬 많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변수는 군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10일자에서 "군 내부에서도 이라크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미군 총사령관인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음을 천명하면서 "장관이 바뀔 가능성이 없으니 쓸데없이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군에 보내려 했다는 것이다.

◇부담 각오해야=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부담도 작지 않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두 사람이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일 럼즈펠드 장관을 경질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이 오면 부시 대통령으로선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보수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은 "부시 행정부의 동료 중에서도 럼즈펠드를 도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은 놀랍다"면서 럼즈펠드 장관을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적잖은 의원들이 럼즈펠드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올인'도박이 성공할지 관심거리다.

◇미공개 사진 CD 3장=부시 대통령은 이날 국방부에서 포로학대 관련 미공개 사진 10여장을 본 뒤 "매우 혐오스럽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방부의 래리 디리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에게 보여준 사진 외에도 국방부는 학대 장면을 담은 짧은 비디오 수십개를 갖고 있고 콤팩트디스크(CD) 3장에 수백장의 사진이 담겨 있으며 상당수가 중복되는 사진들로 정확한 수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디리타 대변인은 "명백하게 부적절한 하거나 성적(性的)으로 부적절한 행동도 일부 포함됐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 상원은 포로학대를 비난하고 가혹행위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런 가운데 CNN과 USA 투데이가 지난 7~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취임 후 최저수준인 46%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51%나 돼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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