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캐피탈 파격 인사제도

중앙일보

입력

작년 7월 현대카드·캐피탈이 도입했던 신(新)인사제도 ‘커리어 마켓(Career Market)‘이 시행 1년여만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어 냈다. 필요한 인력에 대한 사내 공모 뿐만 아니라 회사내 인력시장에 자신을 매물(?)로도 내놓을 수 있게 한 이 제도는 처음부터 눈길을 끌었었다.

■ 부서 옮기고 싶으면 ‘커리어 마켓’에등록= 커리어 마켓이란 ‘사내 인력시장’을말한다. 인력이 필요한 부서에서 사내 공지를 통해 인력을 뽑아 쓰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직원 개인들이 사내 채용시장에 본인을 매물로 내어 놓는 시스템을 도입한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작년 7월 제도 실험에 앞서 이 회사 정태영 사장은 ‘직원들께 드리는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러분이 현대카드·캐피탈을 선택할 때 ‘직업 선택의 자유’에 입각해서 했을 것입니다. 막상 입사 후에는 회사의 중앙집권적인 인사시스템 탓에 여러분의 직업 선택의 자유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사내 직무 선택권’을 드리기 위해 사내 인력시장인 커리어마켓을 도입하려 합니다. 위대한 기업은 혁신적인 조직문화와 선진적인 인사제도에서 온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구축한 커리어 마켓은 ‘오픈 커리어 존(OpenCareer Zone)’과 ‘잡 포스팅 존(JobPosting Zone)’ 두 가지로 나뉜다. 오픈 커리어 존은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은 직원들이 자신을 등록하고 마케팅하는 공간이다. 각 부서장들은 이곳을 들여다 보며 필요한인재가 있는지 살핀다. 반대로 잡 포스팅존은 각 부서가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며 공모하는 곳이다. 한 부서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선(先)전출, 후(後)충원’의 원칙을 적용해 옮기겠다고 손든 직원을 부서장이 막을 수 없도록 했다.

 ■ 이용 대상자 실장급까지 확대= 올 상반기 중 커리어 마켓을 통해 부서를 옮긴 직원은 무려 190여명. 회사 전체 인사이동의80%를 넘는 비율이다. 올해부터 제도 이용대상을 실장급(부장 이상)까지 확대했다.

도입 초기 가장 큰 걱정은 인사보안 문제였다. 인력 공모에 지원하거나 오픈 커리어존에 자신을 매물로 내어 놓은 일 등이 알려져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보안문제나 이동을 원하는 직원에 대한 소속 실·본부장의 불허, 이동하려는 직원에 대한 불이익 등을 차단하는 데 정 사장이 직접 나섰다. 임원 회의에서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인사문화 정착을 위해 실장급 이상임원진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불과 1개월여 만에 25명 이상의 직원이 이 제도를 활용해 부서를 옮긴 것. 부서는 물론 직급도 일반 사원에서 차장급까지 다양했다. 한 달 만에 인사이동이 철저하게 직원들의 판단과 희망에 따라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도가 빠르게 정착하고 직원들의 인식이 급속하게 바뀌자 이 제도를 기획한 인사부서가 오히려 놀랐다. 자기 계발에 매진해온 직원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캐피탈 영업기획부서 핵심인력으로 근무하던 A과장은 평소 재무관련 업무를 하고 싶어 CFA(공인재무분석사) 자격증을 따 놓았다. 그는 작년말 재무부서로 이동해 힘들었던 준비 과정을 보상받았다. 지점에서 본사로, 지원부서에서 영업 일선으로, 또 이직하지 않고서도 본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 등이 제공되고 있다. 회사 조직이 역동적으로 바뀌고 여가시간에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하는 직원도 크게 늘었다.

“직원들에게 자신을 개발할 최대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는 정 사장의 말이 이 회사의 인사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프리미엄 성태원 기자
일러스트= 프리미엄 이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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