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학대, 상부 지시 따랐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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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가게나 닭가공 공장 등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의 주범이 될 수 있었을까.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포로 학대 혐의로 기소된 7명의 미군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라크 포로 학대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는 의혹이다.

◇"희생양이다"=기소된 7명 중 3명은 여군이다. 린디 잉글랜드 일병은 입대 전 닭가공 공장 등에서 일했다. 사브리나 하먼 상병은 피자 가게 부점장 출신이다. 남자인 제레미 시비츠 상병은 수용소 경비병이 아닌 트럭 정비병으로 훈련을 받았다. 기소된 미군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포로 학대에 가담했을 리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잉글랜드 일병과 같이 자란 데스티니 고인은 "그들은 희생양으로 이용됐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잉글랜드의 남자 친구이면서 역시 기소된 찰스 그레이너 상병의 변호인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인 기 워맥은 "그레이너 상병은 명령에만 따랐다"고 말했다. 오는 19일 바그다드 군사법정에 서는 시비츠 상병의 아버지 대니얼은 "내 아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불평했다.

◇조직적 범죄 가능성=이 사태의 초점은 차츰 가혹행위가 상부 지시나 묵인에 의한 것이었는지로 모아지고 있다. 기소된 그레이너 상병의 변호인은 "군 정보기관이나 중앙정보국(CIA)이 포로 취급 방법을 지휘했다"고 말했다.

'아미 타임스'도 10일자 사설에서 "예하부대의 문제가 아닌 군 최고 지휘부의 실수"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상원의원인 린제이 그레이엄(군사위원회)은 "이것은 제도적인 실수다. 사병들을 희생양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군 보고서에 따르면 제이벌 데이비스 병장은 조사관들에게 "군 정보기관이 학대를 용인했다"고 말했다.

이라크 내 미군 수용소 총감독관으로 파견된 제프리 밀러 소장은 "지금도 장성급 지휘관의 재가를 받아 '감각 박탈'같은 방식의 심문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예상되는 더 큰 파문=포로 학대에 대한 새로운 폭로가 그치지 않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0일자 최신호에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한 미군 간수가 수감 중인 이라크 여성을 주기적으로 성폭행했다고 같이 수감됐던 이라크인 남성의 증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주간지 '뉴요커'도 알몸의 포로가 미군 군견의 위협을 받아 겁에 질려 있는 사진,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이라크 포로 몸 위에 미군이 앉아 있는 사진 등을 9일 추가 공개했다.

한편 존 워너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국방부에서 미공개 포로 학대 사진들을 추가로 제공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에게만 공개될 이 사진들 중에는 ▶이라크 여성 강간▶구타당해 숨진 이라크인 시체와 미군들의 시체 훼손 장면▶어린 소년들에 대한 강간 장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더 큰 파문이 예상된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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