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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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누에 「잠(蠶)」자와 말 「마(馬)」,벌 「봉(蜂)」,거미「지(蜘)」,사슴 「녹(鹿)」,그리고 굴을 가리키는 「석화(石花)」와 같은 한자로 엮어진 노래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물론 누에나 말이나 벌같은 것을 읊은 노래는 아닙니다 .이 한자에서빚어지는 소리를 빌려 우리 옛말을 적은 이두체(吏讀體) 노래지요.이를테면 「마성(馬聲)」이라 써서 「마소래」라 읽히고 있는겁니다.「마(馬)」라는 한자의 음독(音讀)소리와 「성(聲)」이라는 한자의 옛날 새김 소리 「소 래」를 따서 「마소래」라 읽히고 있는데 요즘 말로 하면 「마소」 「마시오」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봉음(蜂音)」이란 한자도 「보소래」,즉 「보소」「보시오」의 뜻으로 읊고 있는 것입니다.』 스물일곱자의 한자로 엮어진 노래인데 전반의 13자는 남자의 말,후반의 14자는 여자의말로 화답하듯 지어진 교묘한 섹스의 노래라 한다.
섹스 응답가(應答歌)라니….독신자 남성들의 얼굴엔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
『요즘 말로 간추려 보면 「남근 꺼내 박아 눕히데만 미워하진마소」라는 것이 남자의 말.「보소,잇따른 곶이가 거칠어 내 여음(女陰)이 불쌍하이」라는 것이 여자의 말이지요.「곶이」는 성행위의 옛말입니다.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이 모두 강장식이거나 섹스에 강한 것들입니다.누에 번데기가 그렇지요,벌꿀과 로열 젤리가 그렇지요,석화가 그렇지요,녹용이 그렇지요.그리고 수컷말은 정력이 아주 센 놈이고,또 여왕벌과 여왕거미를 당하는 수컷은 없지 않습니까? 교미 후에 모두 죽어버리니까요.
』 남자들이 『와-』 웃었다.무엇이 우스운가.
『이건 분명히 섹스의 노래입니다.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주 시니컬한 반체제 노래로 드러납니다.남자는 독재 군주,여자는피압박 민중입니다.잇따른 포악 정치가 너무 거칠어 민중이 불쌍하다는 야유 섞인 항의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 다.지은이를 알 수 없는 작자불상(作者不詳)의 노래인 것도 그 때문이라 여겨집니다.겉보기는 아주 야한 성애가(性愛歌)처럼 꾸며놓고 안으로는 체제 비판이거나,쿠데타 음모의 사발통문이거나,암살지령이거나….「만엽집」엔 이같이 이중으로 읊 어진 노래가 많습니다.음모의 지령문이 발각될 경우 잡노래라며 핑계될 수 있도록 일부러이중가(二重歌)를 지은 것같습니다….』 나선생의 목소리가 칼칼했다.을희는 얼른 보리차에 얼음을 띄워 그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얼음이 든 유리잔을 들며 나선생은 말머리를 바꿨다. 『삼국시대에도 「온 더 록」 칵테일이 있었습니다….』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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