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韓人들>5.현지에 뿌리내린 기업.기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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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8년전 한국의 해병대 출신 몇명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원시림 속에 들어갔다.국내의 빈약한 산림자원을 해외에서 확보하겠다는 포부에서였다.패기만 믿고 아름드리 나무를 도끼로 찍어 나갔지만 5명이 하루에 한 그루를 쓰러뜨리는게 고작 이었다.어렵사리 나무를 베어도 실어낼 길이 막연했다.벌목은 일단 접어두고길부터 닦기 시작했다.그러나 애써 닦은 길도 툭하면 쏟아지는 비에 유실되기 일쑤였다.
한국의 해외투자기업 1호인 코데코(한국남방개발)가 인도네시아남칼리만탄주 바투리친에 처음 진출할 당시의 고충은 상상을 초월한다.거의 30년동안 온갖 역경을 무릅쓴 결과가 오늘날 현지에고스란히 남아 있다.그동안 닦은 임도(林道)2 천5백㎞중 상당부분은 국도나 지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산간 곳곳에 세운 크고작은 학교는 낙후된 이 지역의 간판 교육기관이 됐다.당시 3가구만 살던 이곳이 인구 6만5천명의 도시로 탈바꿈했다.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도시 하나를 건설한 셈이다.
중2년생인 다타안시안(15)은 『코데코가 무척 고맙다.학교에서 영어도 배우고,아프면 병원에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바투리친 주민들에겐 손꼽아 기다리는 특별한 날이 있다.
11월29일,바로 코데코 창립기념일이다.각 군(郡)에서 30개팀이 출전,「코데코 컵」을 놓고 축구.배구등 각종 운동시합과 놀이 한마당을 펼치는 축제날이다.
인도네시아에서 2만명의 식솔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한 코데코는 지난 2월 새사업에 착수했다.
이 나라 최대 기업인 사림그룹과 손잡고 연산 2백50만 규모의 시멘트공장을 시작한 것이다.5억달러를 들여 98년 5월 완공한다는 목표다.
안정적인 식량확보 차원에서 2년전 서울시의 1.6배나 되는 방대한 농지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벼농사 채비도 갖추고 있다.나무를 베어낸 땅엔 6년전부터 야자수를 심었다.야자열매를 가공해화장품.식용류등 갖가지 제품을 생산할 공장도 내 년께 착공할 예정이다.
코데코보다 3년 늦은 71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코린도그룹도벌목과 합판사업을 기본축으로 운동화.신문용지생산 컨테이너,부동산개발,금융으로 확대한 사업영역을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다.
필리핀 최대 신발회사인 한미통상의 이세채(李世采.54)사장은사업장인 마닐라외곽 바탄반도에서 「가드 파더(代父)」란 소리를듣는다. ***필리핀人 .代父' 별명 설립 11년째인 올해 이회사는 종업원 3천8백명,연간 수출 5천만달러규모로 성장했다.
이 회사가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 상상보다 훨씬 크다.그는 4~5년안에 미국 중견 신발업체를 인수,자기 상표를가진 세계적인 신발업 체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순흥통상이란 무역회사를 하는 이순흥(李順興.59)사장은 규모는 작지만 제대로 뿌리내린 사례로 꼽힌다.
68년 베트남에 들어가 고철(古鐵)장사를 시작한 그는 75년베트남패망 직후 탈출에 실패했다.그후 76년 사업수완이 뛰어난베트남여인과 결혼,확실한 현지기반을 갖고 있는 그는 현재 한국차가 베트남 중고차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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