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상 1천여개 사업잡기 전쟁-무기구매절차와 중개상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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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양호(李養鎬)전국방장관을 둘러싼 의혹이 무기구매 관련 「흑막」여부로 비화되고 있다.군당국이 무기중개상이라는 權병호씨는 무기거래 실적이 없는 사기꾼에 불과하다며 그 가능성을 외면하고있지만 ▶李전장관이 權씨와 상당한 교유를 해온게 분명하고▶權씨가 무기거래와 관련해 대기업과 접촉한게 사실이기 때문이다.그 구체적 연결고리의 하나가 국민회의측이 공개하는 權씨에게 써준 李전장관 영문 자필메모와 대우가 추진하는 경전투헬기 사업이다.
국방부에 정식으로 등록돼 있는 무기중개상은 국내업체 3백여개와 외국업체 7백여개등 모두 1천여개.그러나 실제로는 80~90여개의 업체만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전쟁상인」인 이 무기중개상들도 국방부의 무기구매 과정에 관한 정보 수집과 사업참여를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로비전이다.「웬만한 건」 하나만 챙겨도 1~2년은 놀고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올 만큼「떨어지는 게」 많은 사업이므로 중개상들은 전직 장교를 고용하고 갖가지 연줄을 동원하는등 사업을 따내는데 혈안이다.6공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구속사태등을 몰고온 차세대 전투기사업이 대표적 케이스다.
국방부가 군이 필요한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군 내부는 물론 관계부서 의사결정을 거쳐야 하므로 통상 3년이상이 걸린다.
우선 국방부는 우리 군의 능력을 토대로 국방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요되는 무기 또는 장비 수준과 양을 설정한다 .
이것이 결정되면 합참은 육.해.공 각군으로부터 필요한 무기의요구수준(ROC)과 수량에 관한 종합적인 기획서를 받는다.합참은 또 각군의 형평성과 국방예산을 감안해 구매량과 ROC를 다시 한번 검토,조정한다.
이를 종합한 책자가 「합동전략목표기획서(일명 JSOP)」다.
국방부는 국내 방산업체들이 개발.생산하는 무기에 관해서만 통보한뒤 나머지는 비밀로 분류하고 있는데 무기중개상들은 비밀로 분류돼 있는 이 책자의 구매계획 내용을 알아내기 위 해 열을 올린다.사업 성패가 1차적으로 달린 부분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로비가 성행하게 마련이다.
국방부는 이어 이 계획에 따라 무기및 장비의 국내.해외구매 여부를 결정하고 중기계획에 반영,예산을 확정한다.기술적으로 국내개발이 불가능하거나 비용이 규정보다 훨씬 많이 소요되는 경우에만 해외구매를 선택하도록 규정돼 있다.해외구매로 결정되더라도외국업체와 계약하기 전에 국내개발이 가능한 경우에는 국내개발.
구매로 수정할 수도 있다.李전장관이 權씨에게 써준 F-16 자동고장확인장치도 해외구매를 먼저 고려하다 대한항공이 이미 이 장치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어 국내개 발로 돌린 경우다.
국방부는 국내.해외구매를 결정한 뒤 업체를 선정하는데 무기중개상들의 총공세가 이 단계에서 펼쳐진다.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벌이는 것은 물론 「가용한」모든 수단이 동원된다.때문에 이와 관련된 소문들 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나돈다.
국민회의측이 문제삼은 경전투헬기의 경우 대우중공업이 개발키로결정됐으나 막상 시험평가에서 요구성능에 미달돼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됐다.
이같이 복잡하고 오랜 기간이 걸리는 무기구매 과정은 그 「떡과 고물」이 워낙 괜찮기 때문에 앞으로도 단계마다 무기중개상이개입,비밀유출.뒷돈거래등 말썽의 소지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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