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어린이날의 산업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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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야-, 여기 집보다 넓고 좋다."

다섯살짜리 건우와
한해 아래의 동생 선우는
아빠사진이 걸린 영안실이
놀이터인 줄 안다.

5월 5일 어린이날
눈부시게 화창했던 봄날,
조선소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아빠는
이날도 일터로 향했다.

휴일수당 6만원을 벌기 위해
어린이날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얼굴을
가슴에 묻은 채
고단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퇴근하면 맛난 거 사줄끄마."
아이들에게 다짐했던 아빠는
영원히 약속을 못 지키는
몹쓸 아빠가 되고 말았다.

산재(産災)의 올가미는
건우와 선우가 달려들던
아빠의 가슴을 빼앗아갔다.

"어린이날이
지 애비 제삿날이 됐습니더."

아빠와 같은 조선소에서
역시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할아버지는
철없이 뛰노는 손자들을 보며
목이 멘다.

아들의 영정(影幀)을 보고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대학 다니던 아들이
조선소에서 일한다고 할 때
왜 뜯어말리지 못했을까.

"할배 할배
아빠한테 전화해봐-"

건우와 선우는
아직도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줄 안다.

*경남 진해 STX조선소의 하청업체 근로자 김외진(29)씨가 어린이날 출근해 일하다 무게 1.3t의 철판에 깔려 숨졌다. 노조 측은 "원래 2인1조로 작업해야 하는데 휴일에 사람이 없어 혼자 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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