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의 쇠퇴로 한반도 긴장 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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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랑스의 국제관계관측사무국(ORI)은 최근 탈냉전후 국가간의무력충돌 위험이 크게 감소했으며 앞으로 각종 분쟁으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그러나 국가간 충돌가능지역으로 남북한과 인도.
파키스탄,중국.대만을 지목하면서도 앞으로 국가간 전쟁이 발생할위험은 희박하다고 예측했다.얄타체제 붕괴이후 지구촌의 전쟁양상을 조사연구해 온 이 기구의 이러한 전망은 기술발전,경제의 세계화,미.소대결의 종식이 가져온 전략의 변화,유엔등 국제기구의강화,국가간 체제상의 동질화 진 전등을 근거로 한 것이다.오늘날의 분쟁은 적대국 또는 적대집단간에 소규모 무력을 동원하거나이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완화된 「괴이한 현상」이라고 규정하면서걸프전쟁후 처음으로 대규모전쟁 없는 시대가 열린것 같다고 진단했다. 현재 지구촌에는 30여지역이 분쟁에 휘말려 있다.분쟁양상은 다음 7가지로 분류된다 .①한반도와 인도.파키스탄등의 지역분쟁②중동등의 자원획득을 위한 분쟁③보스니아와 체첸등의 민족적 투쟁④세르비아와 알바니아등의 민족통일주의⑤르완다와 소말리아등의 종족.부족.종교분쟁⑥알제리와 이집트의 혁명적 테러전쟁⑦멕시코 샤파스등의 반식민투쟁등이다.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 앞으로 점증(漸增)될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는지가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돼 있다.최근 ORI 전문가들의 분쟁학 연구결과는 한반도상황에도 시사하는바가 크다.
군사전문가 장 루이 뒤푸르는 『오늘날 안전을 위한 첫번째 문제는 강대국의 야망에 있지 않고 오히려 한 나라의 파탄에 있다』고 지적했다.다시말해 『전쟁은 국가의 강대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약화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분쟁학의 이 러한 일반이론은 옛 소련의 몰락을 근거로 삼는다.소련의 해체로 중앙아시아에 체첸등의 독립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또한 고무등의 수출이익을 둘러싼 몬로비아의 내전이나 공항통제권 장악을 위한 모가디슈의 분쟁등도 국가의 약화가 원인이라고 한다.여기에 북한의 경우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만성적 식량부족으로 기아가 심각하며 코메콘(COMECON)체제의 붕괴로 구상무역이 와해되고 경화결제의 일반화로 경제파탄에 직면한 북한체제의 약화가 긴장의 원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뒤푸르는 『앞으로 전면전쟁은 사실상 어렵고 전체주의에 의한 전쟁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그는 보스니아내전에서 세르비아계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와 이라크의 독재를 전체주의로 지목해전쟁위험을 경고했다.북한도 같은 범주로 보아야 할 것 같다.북한은 공산주의를 고수하면서 체제개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푸르는 전략상 요인으로 『모든 국가가 동맹의 상실로 무기 및그 부품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전쟁이 크게 억제되고,설사 공격이 감행되더라도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관측했다.소련과 중국이라는 동맹을 상실한 북한의 경우에 들어맞는 분쟁이론이라 하겠다. 뒤푸르는 마지막으로 정치.경제의 이질성이 지역불안정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이것이 남북대결 상황을 지속시킨다는 것이다.이것은 레몽 아롱의 전쟁학을 답습한 것으로 새로운 이론은 아니다.아롱은 『체제의 이질성이 불안정과 분쟁의 요인』이 라고 1960년대에 말하고 『체제동질화가 평화구축의 요체』라고 밝혔던 것이다.이것이 아롱의 유명한 동서진영 체제접근론이며 냉전적긴장상황에 있는 한반도에는 아직 유효하다고 하겠다.
ORI의 분쟁학은 한반도의 불안정요인을 상당히 해명한 것 같다.남북한간 대결양상은 한반도의 평화를 항구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적으로 민주국가가 다른 민주국을 공격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그러나 『평 화유지는 민주주의의 수준에 달려 있다』고 밝힌 것은 한국에 많은 암시를 준다.북한의 체제개방이 평화의 충분조건이라면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성은 필요조건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섭일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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