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경작자로 위장해 세 감면 … 농민 몫인 직불금까지 챙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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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2시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누런 빛이 넓게 펼쳐진 논 사이로 들리는 콤바인 소리가 수확철을 알리고 있었다. 이미 수확이 끝나 시커먼 땅바닥을 드러낸 논에는 부서진 벼 줄기가 깔렸다.

“올해는 농사가 아주 잘 됐어. 비료를 제때 뿌리라는 내 말이 맞았다니까.”

농민 김진호(46)씨는 벼가 콤바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흐뭇했다. 하지만 직불금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김씨는 “지난해 직불금 60여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동네 농민 10여 명도 직불금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전했다. 땅 주인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 논농사를 넘길 것을 걱정해 적극적으로 직불금을 받겠다고 따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월곶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유경수 회장은 “김포시가 직불금 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나서고 있어 이 정도”라며 “다른 농촌은 상황이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불제 주장할 엄두 못 내=현재 김포시의 논 면적은 약 7400만㎡. 농민 수는 2만여 명이다. 이 가운데 실제 경작자는 4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외지인 소유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 맡는다. 외지인들이 서울과 가깝고 ‘김포한강신도시 건설’ 등 개발 잠재력이 풍부한 김포시 농경지를 투자 목적으로 갖고 있거나 사들인 탓이다. 이에 따라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외지인도 다른 지역보다 많은 편이다.

시는 지난해 6317만㎡ 논에 대해 약 63억원의 직불금을 지급했다. ㎡당 100원꼴이다. 그러나 이날 군하리 논에서 만난 5명의 농민 중 직불금을 받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감사원이 2006년 경기도 김포·용인·파주·포천 등 4개 시의 직불금 미수령 농가 1752가구를 조사한 결과 1331가구(76%)가 “지주의 반대로 직불금 신청을 일부 누락하거나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유명무실 ‘신고센터’=김포시는 땅주인이 실제 경작을 하는지, 임차농이 대신하는지 일일이 단속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 주소지를 둔 지주가 1년에 일정 일수 이상 논에 들러 경작에 관여하면 실경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포시 유승환 친환경농림과장은 “경작자가 받아야 할 혜택을 지주들이 가로채고 있지만 임차 농민들은 땅주인이 임차계약을 해지할까봐 걱정해 직불금 신청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재 지주들은 ‘경작 확인서’를 내고 직불금을 챙기면서 실경작자인 것처럼 꾸며야 땅을 팔 때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직불금을 받기 위해 지역 이장에게서 실제 경작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하지만 땅주인과 임대 경작자가 합의해 이장에게 확인서를 부탁할 경우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농촌의 정서도 직불금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포시가 지난해부터 시청 및 읍·면·동에 ‘쌀소득보전직불금 부당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신고는 지난해 1건, 올해 1건에 불과했다.

김포=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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