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애증이 교차하는 北.中 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과거 여러번 화해와 반목을 넘나든 북한과 중국이 또 한차례 관계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최근 변화는 과거와 달리 양국간존재하는 불협화음의 틈새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양국 관계의 변화는 양국이 처한 국내적 정치상황과 중국.미국.일본.러시아.남북한등 6개국이 펼쳐가고 있는 국제정치적 역학구조란 두가지 변수를 매개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 중국이 철저한 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보는 것은 성급하고 부적절한 판단이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어떤 상대로 파악하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이를 위해 우선 양국간 관계변화사를 정리해보자.
양국 공산당간에 최초로 우정이 싹튼 것은 한국전쟁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이 한반도에 중공군을 파병한 것이 계기가 됐다.이때부터 양국 사이엔 「혈맹적 전투우방」이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국의 밀월관계는 66년 시작된 중국의 문화혁명(文化革命)과 함께 일단 막을 내렸다.북한이 중국의 주문대로 모스크바를 헐뜯는데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문화혁명이 끝나면서 양국관계는 다시 정상화됐다.
이때부터 80년대 초기까지 양국 관계는 상당히 안정된 상태를유지해왔다.화궈펑(華國鋒)과 덩샤오핑(鄧小平).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등 내로라하는 중국의 영도층 인사들이 한번쯤은 다 북한에 다녀왔다.북한의 노김(老金,金日 成)과 소김(少金,金正日)또한 수차례에 걸쳐 공식.비공식적으로 중국을 찾았다. 그러다가 양국관계에 결정적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먼저 경제난을 이유로 중국이 북한에 대한 무상원조를 중단한데이어 92년엔 한국과 수교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북한은 이미 옛소련과 결별했던 터라 북한이 받게된 「결별통고」의 충격은 컸다.중국이 진정한 북한의 우방이라면 당연히 죽은 노金의 후계자인 소金에 대해 보여줬어야 할 열정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의 투쟁에 있어서 손에 쥐고 있는 중요한카드의 하나로 보고 있는 듯하다.고집불통의 평양에 그나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이용하겠다는 심산이다.이같은 관점에서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현상유지」로 집약된다고 보아야 한다.북한의 남침을 바라지도 않고 또 북한이 망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한반도가 둘로 나뉘어 현상유지되는게 중국에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을 위배해 대만문제에있어 중국방침에서 멀리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전면적 파탄까지는 이르지 않을 전망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리=유상철 홍콩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