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요구 수용 노동문제 관건-'경쟁력 높이기'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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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남미를 순방하고 돌아온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지난달 23일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10% 경쟁력 강화」 운운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었다.가뜩이나 정치권이 정부의 기존 정책이 미지근하다고 성토를 거듭해 왔던 만큼 정부로서도 제 2의 행동을강요당하는 상황으로 발전돼 왔기 때문이다.
경쟁력 10%이상 높이기 추진 방안은 한마디로 9.3경제종합대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속편이다.
9.3대책이 너무 미지근하다는 지적이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제기되자 조금 더 분명해진 실천방안과 일정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방안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스스로 나섰다기 보다정치적인 분위기와 여론에 밀려 시간에 쫓겨 마련한 구석이 많다. 따라서 정책 담당자로선 그만큼 선택의 폭이 적었고 고민도 컸었던것 같다.공기업 경쟁촉진등 구조개편작업도 진일보시킨 반면경기부양적인 정책들도 강도있게 포함시킨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금리인하 추진을 비롯해 공단땅값을 내리고 공장입지에 대한 규제완화(첨단업종의 수도권 공장 증설등)를 과감하게 실시키로 한것은 대표적인 부양책들이다.기존의 토지정책이나 수도권정책을 후퇴시키더라도 기업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더 비중을둔 결정이다.
정부가 가장 신경쓴 또 하나는 정부 스스로 어떻게 하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게 하느냐였다.향후 4년간 1만명의 공무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이 그러한 예다.감원이 아니라 사무보조원등 단순 기능인력과 철도.체신등 사업부서에서 자연감소 분을 충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경제부처를 중심으로 한 제2의 정부조직 개편이나 정부조직을 정책집행과 사업부서로 나눠 사업부서에 대해서는 공기업화하거나 과감한 민간 이양을 추진하는 방안(한국개발연구원 건의)등이 빠져 과연 얼마만큼 정부부문의 생산성을 높 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더구나 4년간의 연차계획이 다음정권에 가서 어떻게달라질지도 알수 없는 일이다.
기업들이 경쟁력의 걸림돌로 지적하는 임금안정 문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정부는 높은 임금을 선도하는 주요 대기업의 임금인상 자제를 유도하는 한편 노동관계법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면에서 경쟁국 수준을 감안해 개선한다」는 식으로 한발 물러선 듯한느낌을 주고 있다.논란의 대상인 정리해고.변형근로.근로자파견제도입 방안에 대해서는 노사관계개혁위 소관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취하고 있다.이번 대책이 얼마나 실천력을 지니고 있을지는 당장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노동법 개정문제가 어찌되는지를 두고 보면알 수 있을 것이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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