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기부수사권 재확대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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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찬반의견이 분분한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권 확대 문제는 그 본질로 보아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정쟁대상이어선 안되고 국가나 국민의 안전을 바탕으로 거시적인 입장에서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기부가 그 소임을 충실하고 완벽하게 수행하는데 있어 수사권의 확대나 축소가 가져올 결과를 비교형량적으로 판단해야만 할 것이다.안기부의 수사권이 확대되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여지없이 억압받게 되고 축소하면 자유와 권리가 신장되리 라는 시각은단순소박하게는 일리가 있을지 모르나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서 볼때 반드시 옳은 견해로는 볼 수 없다.
지난날 공권력의 오용이나 남용의 역사는 끔찍한 일이며,다시는그러한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공권력의 남용은 국민을 무기력하게 하고 나아가 국민의 가치관이 응집된 척도로서의 법을 적대시하게까지 만든다.설령 그렇다 하더라도오늘 당장 국민 전체의 자유와 권리가 파괴될지도 모르는 때에 안기부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혹자는 세계 어느 문명국가에도 안기부와 같은 국가 정보기관이수사권을 가지는 경우는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국가의 체제전복과 관련해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수사권이 없음은 사실이지만 연방수사국(FBI)이 수사권을 행사하고 있으며,일본의 경우 공안관계조사청이 단체에 의한 내란.외환등 파괴활동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앞서가는 자유민주국가들이 그렇듯 우리 헌법도 국민의 권리를 강력히 보장하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국민의 권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어떠한 권리나 자유도 타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하거나,도덕률에 반하 거나 헌법질서를 파괴하는데 행사될 수는 없으며 또한 공공의 복리에 반하는경우에는 그에 대한 제약이 허용되고 있다.
법은 도덕이나 관습.종교.예절등 사회규범의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 인간생활의 대부분은 법 이외의 사회규범에 의해 규제되는 것이다.법은 지배를 위한 도구가 아니며 국민의 행복과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법의 정의( 正義)도 법제도의 하부구조로서의 사회.경제등 조건들과 관련해 추구돼야 한다.법과 정의의 불가분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법이 모두 그 이념으로서의 정의를 실천하고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현실의 법은 인간다수의 생산물이며 그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까닭에 이해대립을 타협한 결과인 경우가 많고 그러한 실정법이 정의를 완전히 실현하고 있지 못함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 것이다. 파스칼이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 진리인 것이 그 저쪽에서는허위다」고 했듯이 우리의 조국분단을 두고 이어지는 반백년에 걸친 소용돌이로 남북의 가치관이 상호불용하는 것은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국가의 법이라 할지라도 어느 일을 판단할 때 서로 반대되는 평가로 나타나는 것은 사물의 시비선악이 단순히 역학적인 관계나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따라서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나 권리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본래 사회적인것인 이상 그 조절이 있어야 하며 이에 따르는 특성은 인정해야한다.상황의 판단은 가치판단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안기부의대공분야 수사권은 확대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우리가 놓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제7조를 주내용으로 한 안기부수사권의 재확대는 그것이 문민정부하에서 여야합 의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더라도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할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여야의 이해득실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여야는 당리당략을 떠나서 이 문제의 중대함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서정호 서강대부총장.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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