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가 발표한 자연사박물관 계획과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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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외국 여행길에 부러운 것중 하나가 자연사박물관이다.
자연사박물관,혹은 과학박물관이란 동.식물과 광물,생태계,인간의 과거와 현재에 관련된 표본을 수집.전시.연구하는 기관이다.
국민 일반에게 자연과 과학의 역사와 현황을 교육하는 학습장일뿐아니라 관광명소로서도 중요한 몫을 한다.특히 연 구분야에서는 진화학.생태학.지구과학등의 기초학문에 필수적인 표본의 보고인데다 환경변화 감시,유전자 은행으로서의 야생종 보존,유전공학등의실용적 기능도 커져가는 추세다.
서구 선진국들은 1~2세기 전부터 국립기관으로 설립해 엄청난표본을 갖추고 전시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미국 워싱턴 DC의 국립자연사박물관(스미소니언)은 1억1천8백여만점이라는 세계 최대 표본을 자랑한다.박사급 연구원만 2백여명에다 직원수 5백명,연평균 관람객은 8백만명을 헤아린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2백만점의 식물표본과 4.5㎞ 길이의 선반을 가득 채운 물고기 표본병을 포함,6천6백만점을 보유하고 연간 3백30만명의 관람객을 받아들이고 있다.이에비해 우리나라에는 이화여대등 대학 4곳과 과천 서울대공원,그리 고 제주도에자연사박물관이 하나씩 있지만 모두 소규모다.
정부,특히 문화체육부가 지난해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91년부터 시작된 학계의 건립운동을 받아들인 것으로 때늦은 감조차 있다.문체부의 구상은 한국건축가협회에 용역을의뢰한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기본방향 연구」내 용을 지난달 24일 중간발표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건축면적 3만평,대지 3만~10만평 규모의 초대형 박물관을 2008년부터 2014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한다는 것이다.문체부는 올해 3억6천여만원을 들인 이 연구계획의 최종보고서가 오는 11월에 나오면 이를 토대로 내년에 부지심사를 거쳐 98년부터 설계공모등 구체적 건립에 들어갈 계획이다.문제는 연면적 3만평,총예산 6천억원이라는 초대형 박물관을 채울 수천만점의 표본과 수백명의 연구인력을 우리가 조달할 수 있느냐하는 점이다.이같은 건축규모는 뉴욕 자연사박물관(3만4천평)에이어 세계 2위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보유한 생물표본의 총량이 4백만점에 미달하는 현실에서 1억1천여만점을 보유한 스미소니언박물관보다 3천평이 넓은 건물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일본은 경제규모가 우리의 11배를 넘지만 도쿄(東京)국립과 학박물관의 면적은 6천평에 불과하다.
게다가 문체부는 정작 핵심이 되는 표본에 대해선 『동북아 지역의 표본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 아시아 전체,혹은 한반도에 초점을 둘 것인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대학부설 자연사박물관이여러 곳 있으니 기증받으면 된다』는 등의 안일한 입장을 취하고있다. 대학 자연사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대학의 표본을 모두 합쳐도 20만점도 안된다』면서 『수십년간 초라한 수장품밖에 보유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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