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병 이반" 모스크바 촬영 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찌허(조용히)!』 모스크바 근교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요트장.갑자기 콩볶는 듯한 총소리가 들리고 자욱한 포연이 시야를 가려버린다.뿌연 탄막을 뚫고 돌연 나타난 사나이는 잔뜩 그을린 얼굴의 박상원.카키색 군복을 걸친 그의 가슴에는 수류탄과 탄피가 매달 려있고 피묻은 손엔 AK소총이 들려있다.덤벼드는 장신의 러시아 사내들을 잇따라 때려 눕힌 그가 적의 진지로 진입하는 순간,『삐뽀 삐뽀』이상한 소음이 들린다.『컷,컷!,뭐야 자동차잖아.』 기겁한 스태프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내곤 실소를 터뜨린다.러시아 올로케로 촬영중인 영화 『용병이반』은 헬기까지동원한 대규모 격투신을 찍던중 총소리에 놀란 자동차의 경보음으로 예기치않은 NG를 내고 말았다.
흥행의 돌파구를 이국적인 무대에서 찾아보려는 로케영화가 충무로에서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모스크바에서 1백%를 찍는 『용병이반』을 비롯해 모로코 사하라사막을 배경으로 한 『인샬라』,일본 도쿄를 무대로 촬영중인 『깡패수업』등이 그 것 이다.
이중 『용병이반』은 한국인으로서 러시아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는정체불명의 사나이 「이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이색적인 소재에 25억원의 방대한 제작비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다.감독은 93년 인기드라마 『폴리스』를 연출했던 전 KBS PD 이현석씨.PD들의 감독데뷔가 붐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용병이반』이 거의 첫번째로 개봉(올 12월초)될 예정이어서 그의 긴장과 각오는 남달라 보인다.
『그냥 재미.사랑.카타르시스등 인간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감정들을 충실히 그린 영화입니다.다른 TV출신 감독들은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사회성이나 관념성을 연장한 작품들을 기획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그보다 세계인이 공감하고 즐 길만한 재미있는 영화로 승부할 작정이에요.』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일하다 러시아로 흘러든 이반은 모스크바에 사는 한국인 부호의 어여쁜 외동딸 「지혜」의 보디가드를 맡게 된다.오페라극장의 프리마돈나인 지혜는 자신을 인터뷰하던 기자가 마피아 두목에게 살해당하는것을 목격하는 바람 에 마피아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마음씨 착한 그녀는 이반의 황량한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이반은 잠시나마 생의 행복을 느낀다.집요한 마피아의 추적에 지혜가 잡혀가자 이반은 용병시절 러시아 전우들과 함께 적의 소굴에 뛰어 들어 그녀를 구해내지만 다시 무대에 선 지혜를 보러갔다가 마피아 잔당의 총에 쓰러지고 만다.
AK소총등 실제 총기와 러시아군 헬기,경찰차 20여대가 동원된 총격전이 인상적이지만 단순한 액션물은 아니다.박상원과 신인여배우 김지혜(지혜역)가 펼치는 풋풋한 멜로와 늘씬한 러시아 남녀배우들이 벌이는 베드신을 곳곳에 배치,국제적 감각 넘치는 흥행물을 선보인다는게 제작진의 의도다.탄탄한 구성도 장점이지만거대한 역사와 서정미가 어우러진 러시아의 이국적 풍광을 볼 수있는 것도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이라고 이감독은 자랑한다.
모스크바=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