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필리핀 유학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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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유학을 떠나면서 텅 빈 책상이 하나 둘 늘어갔지만, 유학은 내게 딴 세상의 얘기처럼 느껴졌다. 아직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내게 외국으로 나가 영어로 수업을 받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유학을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할 뿐, 그것이 내게 현실로 올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유학 프로그램에 대한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유학을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나와 가족들은 미국·캐나다·필리핀 등 여러 나라의 유학 프로그램 자료를 펼쳐 놓고 어디가 좋을지 가족회의를 가졌다. 우리 가족이 내린 최종 결론은 필리핀이었다. 아직은 미국이나 캐나다로 직접 유학을 가기에 나의 영어 실력이 완벽하지 않고, 혼자서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담임선생님과 같은 관리교사가 꼼꼼히 관리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엄마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수학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족과 떨어지는 것이 몹시 두려웠지만 같은 학년의 친구들 여러 명과 함께 생활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나의 가슴은 가득 찼다. 드디어 상상 속에서만 머물러 있던 유학을 내가 직접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필리핀에 왔을 때는 뭐를 어떻게 해야할 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서 진행된 영어 인터뷰에서 나는 “음..음..”하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속에서만 영어가 맴돌 뿐이었다. 학원에서 문법이나 읽기 중심으로 공부를 해왔던 나는 원어민 선생님과 가까스로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나에게 24시간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규칙과, 하루 11시간 이상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수준에 맞춰 수업을 진행해주시는 선생님들의 설명과 그룹 수업을 통해 까마득하고 막막하게만 보이던 영어의 바다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한국의 학원에서는 외국 선생님과 말을 나누는 시간이 겨우 5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일 1:1로 영어 선생님과 3시간 이상 수업을 하고, 4명이 한 반이 되어 교과 수업을 영어로 받으면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과 어색함이 점점 사라져 갔다. 7개월 간의 지옥 같은 영어 수업을 견뎌 낸 나는 이제 외국인 선생님과 한국말로 하는 것만큼 편하게 얘기를 나눌 정도로 실력이 늘었고, 영어는 이제 약점이 아니라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하루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필리핀은 내게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나의 미래를 펼쳐볼 생각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통해 이제는 영화도 자막 없이, 그리고 영어로 된 원서도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실력이 되었고 외국인 선생님들과 사회나 과학 과목에 대한 부분들도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나를 지도하는 미국인 선생님은 내가 현재 미국학교를 들어가도 충분히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며 격려해 주셨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영어 실력으로 더 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것이다. 지난 7개월은 내가 흘린 땀 이상의 열매를 가져다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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