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況을산다>3.불황의 심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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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제불황속의 대량감원은 어떤 이유에서 벌어지는 행사인가.기업은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위기의식이 결여된 조직분위기를 바꿔보려고,불필요한 인원을 줄이기 위해,살아남기 위해 취한 「피치못할 조치」였다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반면 해고자들은 책임전가로,조류에 편승해 행해진 「피할수 있는 조치」로 여기고 있다. 어느쪽이 옳은지는 몰라도,자진사직도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못하는 한국 직장인에겐 해고란 마음에 큰 흠자국을 남기는 행태임에는 분명하다.
지난 3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지상포럼 「미국의 감량화」는 해고당한 독자들의 목소리를 자세히 전해주는 기획특집이었다.이들이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실직 전후의 생생한 경험담에 따르면 초기에는 적어도 자기자신만은 해고대상이 아닐 것으로■ 생각했고,해고통지를 받고나서 엄청난 분노를 느꼈고,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실직을 현실로 받아들였으며,궁극적으로 이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했다는 것이었다.감원대상자들이 이처럼 겪어내는 「부정→분노→수용→대응」의 과정은 마치 암환자들이 겪어내는 고통의 과정이나진배 없을 것이다.
실직이 얼마나 고통스런 경험인지 몇가지 자료를 더 제시해보자.한국인들은 배우자의 사망을 1백으로 했을 때 해고는 70정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견디기 힘든 경험으로 간주하고 있다.실직률이 1% 증가하면 간경화나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 은 2%,자살률은 3%,정신병원 환자는 4% 증가한다는 보고(1991년.
미국)도 있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실직자들은 심한 불안감,우울증,자기비하,무기력증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엄청난 불행을 해고자에게 경험하게한 기업은 해고결정의기준선정,시행방식.시기등에 있어 공정한 절차를 거쳤는지 꼼꼼히점검해야 한다.자신에게 불공정하다고 느껴지는 고용계약 해제도 공정한 절차를 거쳤을 때는 훨씬 수용하기가 쉽 기 때문이다.차제에 승진이나 부서배치.직무할당.임금결정등에 있어서도 절차의 공정성을 정착시켜야한다.
아울러 기업은 인원감축을 통해 경제적인 비용절감은 얻을지 몰라도 심리적 비용은 더 부담하게 됐음을 주지해야 한다.
당장 나가는 인건비만 줄어드는게 아니라 남아 있는 직원들의 애사심.공동체의식.소신.혁신적 행동 또한 쪼그라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려줬으면 됐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예전과 다른 자세를 갖고 임해야 한다.그들에게 일의단맛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5백대기업의 90%가 감량경영을 실시한 미국에서 감량 성공률이 50%에도 못미치는 것은 이같은 기업의 몫을 제대로 하지 않아 얻어진 자업자득이다.감량관리(downsizing)의 역효과를 반성하며 적량경영(rightsizing)이 제안되고 있는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부도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의 관행을 철저히 버리고 적은 인원을 가지고 필요한 일만 하는 땀흘리는 정부로 변신해야 한다.
***긍정적 사고 가져야 해고자들은 실직을 패배로 보지않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인식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동시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야한다.
해고는 자신의 통제밖의 일일 수 있어도 새출발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통제아래 있기 때문이다.대신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이 가정으로 유입돼 나타나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정부.국민들간에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져야 한다.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만큼 이들 3자간에 서로를 될수 있는대로 멀리 떨어뜨려놓고 사는나라는 드물다.심리적 거리가 좁혀져야 서로의 필 요성을 인정하고 힘을 합해 국제경쟁력을 갖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근로자들의 기여를 공정한 대가로 돌려주는 기업,국민들의 세금을 아껴쓰는 공무원,자신이 들인 노력의 대가만큼만 요구하는 국민들이 돼 경제적 불황을 정신적 호황으로 뒤집는 대전환극의 서막을 하루라도 앞당겨 올려야 한다.
김명언 서울대교수 조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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