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예술과 만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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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14면

1 정승운의 ‘집꿈숲’ 2 정수진의 병풍 작품 3 노네임샵의 ‘초콜릿 가게’4 김태헌의 ‘놀자’

10월 8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토즈(TOD’S)가 후원하는 ‘2008 사루비아 후원의 밤’이 종로구 안국동 고 윤보선 대통령 자택에서 열렸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은 미술을 중심으로 건축·음악·무용·필름 등 다양한 실험적 예술을 지원하는 비영리 갤러리로 1999년 인사동의 옛 사루비아 다방을 인수하면서 설립됐다.

토즈(TOD’S)와 함께한 비영리 갤러리 ‘사루비아 다방’ 후원의 밤

이후 사루비아 다방은 나이와 경력, 작업 경향에 구분을 두지 않고 독창적 사고와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예술가를 선정해 기획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왔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토즈가 ‘사루비아 후원의 밤’에 동참한 것은 4년 전부터. 토즈가 제공하는 가죽과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제작된 작품을 행사 당일 경매해 그 수익금을 사루비아 다방 운영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토즈는 세계 각국의 여러 예술가와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해왔다. 젊은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세계의 문화를 공감하는 것은 토즈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4년 전부터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도 교류할 수 있어서 기쁘다.”

토즈 아시아지사장 마우로 말타의 말이다. 그는 또한 현대와 전통이 잘 어우러진 한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로 ‘사루비아 후원의 밤’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토즈는 장인정신과 예술을 사랑하는 브랜드다. 이 때문에 가능성과 독창적 실험정신을 가진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일은 토즈로서도 행운이다.”

청명한 가을밤 고 윤보선 대통령 자택의 정원에서 이루어진 행사는 한국의 전통 건축미와 정원의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무대를 연출했다.

어떤 작품들 나왔나
올해의 주제는 ‘아이디어 책(The Idea Book)’이었다. 참여 작가들은 토즈가 제공하는 가죽을 이용해 ‘책’이라는 기존의 물리적 형태를 벗어나 색다른 내용을 전달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책의 또 다른 개념을 제시했다.

김태헌 자기만의 사는 방식 모두를 ‘놀자’라는 개념으로 전환해 이미지를 표현한 김태헌은 가죽을 조금씩 오려 붙여 만든 ‘놀子 Ⅰ, Ⅱ’와 ‘검은 말’ 시리즈를 선보였다. 특히 검은 말 시리즈는 그동안 살면서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을 이미지화해 하나의 책에 담은 것이다.

정수진 “그림은 다차원의 기하학”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정수진의 그림은 평면적인 네모 속에서 점·선·면·형·색 등이 다중적 이미지와 기호들과 만나면서 다차원적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평면과 입체의 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현대적 느낌의 작품 형태가 병풍과 화첩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장 오래된 그림 형식 중 하나인 병풍과 화첩을 이용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언어로써 책을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승운 집·꿈·숲이라는 글자에 착안해 시작된 ‘집꿈숲’ 연작은 드로잉·회화·조각·설치 등 평면과 입체의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6년 동안 다양하게 진행돼 왔다. 삼각형과 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기본 단위로 하는 각각의 글자는 그것이 지닌 의미를 표상함과 동시에 이상적 개념을 실천하는 도구. 이번 작품은 ‘숲’과 ‘집’ 두 단어의 조합을 통해 그 자간이 공간적 요소로 변모되는 유기적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노네임샵 이름 없는 것들의 이름 만들기와 상품화될 수 없는 것들의 상품 만들기를 목표로 활동하는 노네임샵이 선보인 작품은 ‘초콜릿 가게’. 나무 책상자 안에 가지런히 담긴 사육 이전의 ‘동물’과 사육 이후의 ‘가축’들은 모두 초콜릿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맛’보다 가죽이라는 ‘이미지’를 컬러와 질감을 통해 보여 주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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