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 부시의 전쟁 결심, 측근들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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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워싱턴 정가의 산 증인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외교관과 로비스트, 변호사들이 모여드는 세계 정치의 일번지에서 그는 실력과 경륜을 갖추고 나름대로 ‘워싱턴 인스티튜션’의 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 그의 책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몰고 다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심각한 사태의 발생 자체를 전혀 몰랐던 사람조차도 그의 책만 읽으면 사건을 훤히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한 가지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런저런 경로로 들어 본 적은 있지만 그 배경에 대해선 몰랐던 상황들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독자들이 비교적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사진 왼쪽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폴 울포위츠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그래서 『선택』 『어젠다』 『부시는 전쟁중』등 우드워드의 책들은 미국에서 뿐아니라 해외에서도 다양한 계층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신간 『공격계획』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정부가 숨겨왔던 사실들의 폭로에 흥미를 느낀다.

외국 독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벌어진 주요 인물들 간의 마찰과 힘겨루기에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아울러 강대국 미국의 ‘위선’을 도처에서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런 유의 책을 읽으면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요인들을 실명으로 등장시켜 국가 보안사항을 건드릴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을 파헤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사실도 그렇고, 그 책의 직접 ‘피해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마저 인터넷의 선거 홍보용 홈페이지에 권장 도서 목록 1위로 올려놓는 ‘너그러운’문화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33년을 봉직한 우드워드 기자(현재는 부국장직을 갖고 있으면서 자유로운 취재와 집필에 주력)가 이 책을 쓰면서 부시 대통령을 이틀에 걸쳐 3시간 반 이상 인터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의 영향력 있는 신문사의 민완기자와 백악관 간의 묘한 상생 관계를 엿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처럼 내부사정을 바깥에 좀처럼 내보이지 않는 정권도 보기 드물다는 게 일반적 평가라면, 대통령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킨 이 책은 시쳇말로 ‘부시 백악관 훔쳐보기’ 또는 ‘부시의 주변인물 벗기기’에 가깝다. 마침 지난 1일 워싱턴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연례 만찬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은 ‘9·11 사태 조사위원회’의 심문에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응했던 까닭을 물어보자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 나는 모든 중요한 질문에 부통령과 함께 답하든가 아니면 우드워드 기자의 입을 통해 답변하겠다.” 우드워드의 역량을 인정한다는 정치적 제스처였다.

아울러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결정하면서 정보 수집 및 분석에 느꼈던 한계와 참모진 간의 알력 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이 책이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책의 파장이 크게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란 분석도 있다.

『공격계획』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개시 두달 전에 이미 공격을 결심했으며, 이런 계획을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 앞서 반다르 빈 술탄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에게 먼저 알려줬다는 내용 등을 폭로했다.이런 대목은 부시의 측근 중에도 몰랐던 이들이 상당수 있었을 정도로 고급 정보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독자들은 우드워드의 책을 외면하지 못한다.

450쪽에 가까운 책의 흐름을 타다보면 독자들은 미국 본토를 강타한 9·11 테러가 부시뿐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 즉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조지 테닛 CIA(중앙정보국)국장 등의 정신상태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은 9·11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뉜다는 해석에도 공감하게 된다.미국 지도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와 정책결정 과정에 9·11 테러로 멍든 미국인의 심사가 작용했다는 사실에서 이 책은 북한 핵문제와 씨름하며 미국 정책의 향방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할 우리에겐 소름 끼칠 정도의 적실성으로 다가온다. 아무튼 멕 라이언이나 해리슨 포드가 등장하는 영화에 관객이 후회하는 법이 없다는 통설처럼, 우드워드의 책은 독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어느 대목이든 그대로 머리와 가슴에 와 닿는 경험이 될 것이다.

길정우 (본사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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