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가르치고 글 쓰는 일 읽지 않고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윤석달 한국항공대교수. 도서관장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조금은 허황된 말인 줄은 알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책은 분명 내 삶을 견인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누군가가 내 독서의 이력이라도 엿보고, 내 전공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생계형’이나 ‘출세형’ 독서와는 무관하니, 굳이 이름 붙이자면 ‘잡탕’이라고나 할까.

전공서적도 다 못읽는 판에 ‘수목도감’이나 ‘어보’와 같은 내 전공과 무관한 책들, 『산해경』이나 『논형』처럼 이용후생과도 거리가 먼 책들, 언제 볼지도 모르는 ‘기문’‘패서’류 등 잡다한 책들까지 계통없이 읽거나 사들이곤 하는 내게, 지인들은 몰이해와 비아냥을 섞어서 ‘헌책방 차릴거냐?’거나 ‘책 박물관 세울거냐?’고 우정어린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의 서음(書淫)을 잘 모르고 있거나 내가 서치(書癡)라서, 비록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의 어리석음을 가긍히 여기는 말이라 해도, 그러나 나는 아직 그들의 충고를 진정으로 수렴할 뜻이 없다.

가르치는 일이 내 본업이니, 책읽기를 생업으로 삼은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책에 관한 한 초보의 열정을 지니고 있다. 읽지 않고 어떻게 가르칠 수 있으며, 읽지 않고 무엇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책은 내게 아직도 지상의 양식이고, 법이고, 길이다.

한때 나는, 한 권의 책만을 읽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경계할 일이니, 내가 읽지 않은 책은 분명 좋은 책이 아니거나,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이라고 건방 떨며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철딱서니 없이 남독과 다독을 일삼고, 잘 만든 책은 소유하고 싶어하며, 헌책방 순례를 주기적으로 하기는 하지만 나는 독서광도 아니고, 장서가도 못되며, 헌책 폐인(廢人)도 아님을 애써 주장한다.

다만 나는 저 지훈의 ‘주도유단(酒道有段)’을 빌려 내 책에 관한 관심을 말한다면,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책을 읽거나 잠이 안와서 베갯머리에서나 책읽기를 하는 단계를 겨우 지났다고 할까. 혜강 최한기는 새로 나온 책을 사느라 전재산을 탕진했다는데, 나는 책읽기로 내 생애를 탕진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