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의식에 굶주린 현대인 음악회서 허기 채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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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적 침묵과 외부 소음(속세)과의 단절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교향악단 연주회는 종교 의식을 닮았다. 사진은 미하일 플레트노프 지휘의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습.

사람들이 음악회을 찾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음악을 들으러 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간단한 질문만은 아니다. CD와 DVD로 편안하게 집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굳이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번거롭게 음악회에 가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 진다.

그런데 초기의 음악회 풍경을 떠올려보면 음악회가 단순히 음악을 들으려고 모이는 행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곡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객석에 입장할 수 없고 잡담은 물론 기침까지 자제해야 한다는 ‘음악회 에티켓’이 정착된 것은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빌렘 멩겔베르크가 1895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일부러 귀부인들이 새로 맞춘 드레스를 뽐내기 위해 연주 도중 출입문을 삐걱거리며 열고 들어와 주위의 시선을 모으는 일은 예사였다. 초기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선 청중이 음료를 마시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를 서구 중산층들이 성대하게 치르는 의식으로 규정한다. 음악이 종교의식이나 장례식 등에서 부수적 역할도 해내고 있지만 음악회 자체가 의식의 잔재라는 것이다. 오디오·비디오 시대에도 성행하는 콘서트는 의식에 굶주린 현대인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또 연미복을 차려입은 지휘자는 예언자(작곡자)가 기록해 놓은 성서(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신도들(청중)에게 전달하는 사제(司祭)와 같다. 죽은 작곡가의 영혼을 무대로 불러내는 무당이라는 것이다.

지휘자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의 구심점이다. 외부 소음과 철저히 차단된 전용 음악당은 속세와의 단절에서 출발하는 종교 의식의 공간에 다름없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 함께 음악을 듣는 콘서트 형식을 의식이라는 색다른 차원에서 분석해내는 문화인류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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