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뗄 수 없는 관계, 전쟁과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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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 테러 때 비행기가 뉴욕 쌍둥이 빌딩을 공격하는 장면을 TV로 본 사람들은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고 했다. 9·11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보복 공격을 했을 때 세계인들은 다시 한번 ‘영화 같은 전쟁’ 을 만났다. CNN 등의 전쟁 뉴스는 마치 게임기의 모니터를 보는 듯했다. 어둠을 뚫고 빛을 내며 날아가는 미사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불꽃더미…. 종군기자들과 위성사진이 보내오는 화면에는 전쟁을 치르는 ‘인간’은 찾을 수 없고 미사일·레이더 같은 ‘군사 기술’만이 가득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폴 비릴리오(72)가 1991년에 쓴 이 책은 전쟁과 영화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주장한다. 둘 모두 시각적 장치에 의존하며, 결국 지난 세기를 통해 ‘전쟁은 영화가 되고, 영화는 다시 전쟁이 되었다(전쟁에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보다 훨씬 먼저 1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는 공중 촬영 기술로 폭탄을 투하했고, 2차 대전 때 정찰부대는 스파이 위성으로 광활한 공간을 촬영한 화면으로 정보를 얻었다. SF영화는 각국이 우주공간에서 벌이는 전자정보 전쟁으로부터 화면을 빌려왔다. 한편 히틀러가 영화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대중을 동원했던 것처럼 영화는 다시 전쟁에 이용당했다.

우리가 영화로부터 무심히 시각적 쾌락을 얻는 시간이 전쟁의 기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나타나는 장면 하나조차도 쉽게 지나칠 수 없게 된다. 음란물이나 폭력물만이 문제가 아니라 ‘보는 것’ 자체가 커다란 함정이라고, 이 책은 경고한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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