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사라진 옛날 정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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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6강전>
○·이영구 7단(한국) ●·저우루이양 5단(중국)

제2보(14~25)=이영구(21) 7단은 좋은 성품에 서민적인 인상을 지닌 탓에 별명도 이름 그대로 ‘영구’다. 17세의 저우루이양 5단도 안경 낀 얼굴이 두툼해서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천재의 예리한 번득임을 느낄 수 없다. 과거의 천재들과는 영 다른 모습들이다. 이번 대회에서 조훈현 9단이나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은 완전 원로 취급을 받았지만 그들의 젊은 시절은 문자 그대로 ‘칼날’이었고 곁에만 가도 찬바람이 불었다.

기습을 받은 이영구가 14,16으로 귀에 힘을 비축한 뒤 18로 끊는다. 여기서 18의 절단에 주목해야 하는데 만약 흑이 이곳을 이어버리면 그 두터움은 사해를 지배하게 되고 백은 시종일관 허덕이게 된다. 첨예한 전투가 시작된 이상 지금은 빈 귀나 집 따위에 신경쓸 때가 아니다.

관전하던 박영훈 9단이 “사라진 옛날 정석이 나왔네” 하며 모니터를 본다. 무궁무진한 변화를 내포한 이 정석에서 24는 빼놓을 수 없는 한 수. 가령 ‘참고도1’ 백1로 그냥 뛰었다가는 흑2를 당하는 순간 바둑이 거의 끝난다. 3으로 받아도 귀가 한 수로 잡히기 때문에 6 정도로 연결만 해도 선수를 잡고 판을 지배하게 된다.

대신 24에 흑이 ‘참고도2’처럼 받아주면 귀는 한 수로 잡히지 않고 외려 백이 여유를 갖게 된다. 그래서 25는 당연한 수인데….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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