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을찾아서>3.신흥 國恩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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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묻는다:너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원하는가.
답한다:영남 신주서 온 백성이온데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묻는다:너같은 남쪽 야만인이 어찌 부처가 되겠나.
답한다:사람에겐 비록 남북이 있겠지만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혜능이 출가해 황매 동산선사(현 오조사)의 5조 홍인을 참문한첫 문답이다.혜능은 그 떡잎부터가 이처럼 대기(大機)를 번뜩였다. 홍인조사는 당시 야만인 취급을 하던 변방의 오랑캐 혜능의대답에 큰 재목임을 직감, 내심 기꺼이 받아들였다.그러나 주위수좌들 이목때문에 겉으론 무시한채 방앗간 일이나 하라고 물리쳤다. 「불성무남북」이란 혜능의 대답은 불성이 만유(萬有)에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과 같은 맥락이다.혜능은 후일 이같은 불성론을 우리 자신 안에 갖춰져 있는 원만 구족한 자성(自性)으로 구체화시 켜 자성을 철견하면 곧바로 부처를 이룰수 있다는 남종 돈오선의 꽃을 피웠다.그 씨앗은 홍인의 동산법문(일명 동산종)이 뿌렸다.홍인은 달마로부터 4조 도신까지의 두타행(頭陀行)과 경전 의지적인적교오종(籍敎悟宗)을 청산하고 교외별전. 불립문자.직지인심.견성성불이라는 돈종의 주춧돌을 놓았다.
국은사는 6조 혜능이 713년 천화한 곳이다.그의 생가터에 건립된 이절은 조계로부터 3백리쯤 떨어져 있다.승려의 고택을 사찰화한 예는 홍인.혜능.신수조사등 세명밖엔 없다.「선종성지」라는 글씨가 새겨진 산문 바로 앞은 용산 온천휴양지다 .산문을 지나니 첫눈에 조계 6조탑과 같은 크기의 보은탑이 사찰건물들과함께 눈에 꽉차 들어온다.건물은 청대양식이다.
지객승(知客僧)의 안내로 경내를 답사해보니 대웅전 주춧돌이 당나라때 것이다.「전불심인(傳佛心印)」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대웅전뒤의 6조전에는 혜능의 부모님 위패와 6조상이 모셔져 있고 좌우 벽면은 무념.무상.무주.불생.불멸.불천 (不遷)이라는글자가 대구(對句)하고 있다.
옆의 6조 기념당 벽면엔 「육조강세(六祖降世)」부터 「엽락귀근(葉落歸根)」까지 혜능의 생애를 12장의 벽화로 그려 붙여놓았다.그리고 동쪽 절담밖에는 6조의 부모합장묘가 잘 단장돼 있다.국은사는 중종황제가 칙명으로 생가터에 그의 부 모를 기리는절을 세우라고 함으로써 건립된 절이다.보은탑은 혜능이 시적하기1년전 부모의 은덕을 숭모하는 보은의 뜻을 담아 세운 것이다.
혜능은 당 황제,측천무후와 중종으로부터 입내 칙명을 받았으나 두번 모두 노구의 신병을 핑계로 끝 내 사양했다.그에 앞서 4조 도신은 네번이나 황제의 입내 요청을 거부했고 송대 조동종 부용도해(芙容道楷.1043~1118)선사는 입내를 거부하다가 항명죄로 유배까지 당했다.
이같은 남종선의 입내거부 전통은 북종선 비판의 중요 「비교근거」가 되기도 했다.혜능의 제자로 북종을 비판,압살시킨 하택신희(670~762)는 이른바 「활대의 종론(滑臺 宗論)」이라는732년의 활대 대운사 무차대회(無遮大會:귀족. 천민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공개법회)에서 혜능의 입내 거부 사실을 들어 북종의 권력에 아첨하는 내공봉사문(內供奉沙門)행각을 통박했다.
여기서 우리는 권력 주변이나 기신거리는 귀족불교에 대항하는 초기 선종의 민중주의적 정신을 엿볼수 있다.어쨌든 중종은 칙명을전하러 갔던 내시 설간(薛簡)으로부터 혜능의 「심요(心要)」를전해듣고 감동돼 입내거부 항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가에 절을 세우도록 하는 귀의심을 보였다.
***국 은사를 나와 10여분쯤 차를 달리다가 한 장례 행렬을 만났다.차에서 내려 상주에게 금일봉의 「즉석 부의」와 함께정중히 인사를 한후 사진취재를 부탁하니 쾌히 허락했다.
우리와 다른 점이 많았다.우선 장례 행렬에 밴드(농악대)가 앞에서 새납.징등을 치고 불며 나갔다.또 저승에 가서 옷해 입으라는 갖가지 색깔의 옷감을 필째로 늘어뜨려 메고 갔다.취재를끝내고 작별 인사를 하니 상주는 우리의 전도가 평안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차에 오르니 선지식 조주종심선사(778~897)의한마디가 장례행렬을 다시금 눈여겨 보게 했다.그는 같이 살던 한 노화상의 장례행렬을 따라가다가 문득 『수많은 죽은자들이 산사람 하나를 따라 가는구나!』라고 토로했다.관속에 들어있는 사람이 산 사람이고 뒤를 따르는 조문객은 죽은 사람이라는 역설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태어나 우주로 돌아간다.모든 것은 변한다.자연의 흐름에 어긋나는 요구만 하지 않고 자신을 방임의 상태로 놔둔다면 삶은 엄청난 기쁨이다.혜능조사는 아마 이런 마음으로 국은사에서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 거름이 되듯 홀연 히 천화했으리라.선은 한마디로 마음 공부다.마음을 바르게 다스려 「본래의 자기(aboriginal self)」를 확인,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다.이것이 바로 선행위(禪行爲)며 깨침의 실천이다.결국 깨달음 이란 본래 자기가 부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얻는 「놀라움」이다.모든 종교가 수천년동안 매달려온 생사라는 인생의 일대사도 과연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장자는 부인이 죽자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며 『그대는 즐거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축하의 노래를 불렀다던가.
***메모 ▶위치:광동성 신흥현 집성진 ▶교통:광주에서 1백10㎞ ▶유적:6조 친식 여지나무.욕신지(浴身池).탁석천(卓錫泉)등 글=이은윤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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